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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 갈치와 만나다

농어촌우수체험공간 컨설팅 일로 제주엘 다녀왔다. 마당 한쪽의 비닐하우스 속에 수확한 늙은 호박이 하나 가득 쌓인 집에서 만난 한 어머니로부터 갈치국을 대접받았다.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갈치와 늙은 호박만 들어간 담백한 국이었다. 잡맛이나 억지로 끌어낸 감칠맛 따윈 하나도 없어서 마음에 드는 국이었지만 육지의 산골 출신인 나에게는 좀 비릿한 냄새가 오래 남아 아쉬운 음식이었다.
남편이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갯내 나는 생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마 비린 맛이 아쉬웠던 갈치국 탓이었을 것이다. 제주에서 돌아오면서 공항에서 냉동된 갈치를 몇 팩 샀다. 돌아오자마자 장에 나가 늙은 호박 한 통을 사서는 시원하고 단 갈치국을 끓여 가족과 함께 비린내 없이 먹었다.
제주사람들이 즐겨 먹는 갈치국에는 늙은 호박을 넣는 것이 진리다. 늙은 호박은 갈치국 안에서 갈치의 비릿한 맛은 없애주고 육수 없이 맹물로 끓이는 국에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준다. 어설프게 끓여 서걱거리면 맛이 없다. 푹 삶아 흐물흐물해지면 갈치살의 부드러움과 더욱 잘 어울리고 웅크린 마음을 풀어놓게 하는 단맛이 넉넉하게 퍼져 나온다.
여자들은 출산을 하고 나면 늙은 호박 몇 개는 해치우게 된다. 이뇨효과가 탁월해 산후 부종을 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부종을 빼면서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해독하기도 하고 소화흡수가 잘 되므로 병후 회복기 환자나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여러 질환에 도움이 된다. 항산화작용이 탁월하여 노화방지는 물론 항암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늙은 호박에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은 야맹증이나 안구건조증, 결막염 등을 예방하며 시력향상과 눈의 피로를 개선시킨다. 100g당 27kcal 정도인 것에 비해 포만감이 높아 체중증가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지나다니다 보면 호박의 넓은 잎 사이로 언뜻언뜻 호박이 늙어가는 것이 보이는 계절이다. 호박이 늙어가는 계절인 가을엔 갈치도 때마침 제철이라 살이 더 찰지게 부드럽고 달다. 갈치의 성질은 따뜻하며 비위가 허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간을 보해주는 좋은 생선이다. 갈치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며 칼슘함량이 높아 성장기 어린이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다만 인산의 함유량이 많아 채소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이 계절에 한창 단맛이 오른 늙은 호박이나 배추, 무, 대파 등과 같이 넣고 음식을 해먹으면 궁합이 최고다.
갈치가 싱싱할 때는 선명한 은색의 비늘이 반짝거리면서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지만 신선도가 떨어진 갈치는 늘어지면서 비늘의 반짝거림을 잃게 된다. 갈치의 비늘은 갈치 비린 맛의 주범이다. 게다가 갈치의 비늘은 복통과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니 벗겨내고 먹으면 비린 맛도 없애고 복통이나 알레르기로부터 안심하고 갈치를 먹을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늙은 호박 한 통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썰어 소분해 냉동저장 해두면 가끔 늙은 호박의 맛이 별미인 갈치국을 맛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