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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났지만 한낮의 더위는 여전하다. 농부들은 이 무렵을 전후로 세 벌 김매기를 하고 그것을 끝으로 본격적인 가을걷이를 준비한다. 여름내 그렇게도 극성스러워 보이던 풀들이 힘을 잃어가고 처서 이후에는 더 이상 풀들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소의 풀도 깎고 논두렁 밭두렁의 풀도 깎아 추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무렵에는 밤의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한낮엔 여름보다 더 뜨겁기 때문에 일교차가 커져서 농작물에 이슬이 맺히므로 절기상으로는 백로(白露)라 이름 붙여졌다. 대개 이때를 전후로는 가을장마도 모두 물러가고 맑은 날만 계속되므로 이슬을 닮은 포도알들이 더욱 검어지고 향이 짙어져 제 맛이 나므로 절로 손이 가게 된다. 그래서 선조들은 백로를 일컬어 포도의 절기라 하였다. 중복에는 참외, 말복에는 수박, 처서에는 복숭아가 제 맛을 낸다고 하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제철 과일에 대한 이해 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온고지신(溫故而知新)하는 마음으로 밥상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포도는 多産의 상징이다. 조선의 백자 문양이나 선비들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과일이었으며 농사를 지어서도 첫 수확물은 사당에 먼저 고한 후에 먹었다고 하니 포도를 귀하게 여겼던 조상들의 마음도 짐작할 만하다.
포도는 맛이 달고 시며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다. 근골(筋骨)의 습기로 인해 저리는 증상을 완화시켜주며, 기운을 더해주고 뜻을 강하게 해주며, 살이 찌고 튼튼하게 해주면서 배고픈 것과 풍한을 잘 견디게 해줘서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며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한다. 포도나무의 뿌리도 물로 달여 먹으면 열을 내려주고 부종을 없애주며 임산부의 입덧에도 좋고 멈추지 않는 딸꾹질에도 효과가 있다.
현대의 식품영양학에서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을 만큼 항산화의 효능이나 면역력이 높은 포도는 질병의 예방이나 노화방지, 치매예방에 탁월한 식품이다. 껍질을 먹을 때 느껴지는 시고 떫은맛에 들어있다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이 임상실험 결과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예방하고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포도의 껍질과 씨, 꼭지에는 더 많은 양의 레스베라트롤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껍질과 씨를 같이 먹는 것이 더 포도를 더 건강하게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효능은 포도로 만든 와인에도 함유되어 있어 하루 한 잔 정도의 와인이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보다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또 포도는 과일 중에서 피로회복에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흡수되어 에너지로 바뀌는 포도당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포도에 많이 들어있는 단당류이기 때문에 이름도 포도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포도라고 할지라도 당뇨의 증세가 있는 사람이나 대변이 묽은 사람은 신중을 기해서 먹어야 할 것이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어두워질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