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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삼방리 농장일지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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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5 01:18
본문
땅도 쉬어야 한다.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삼방리. 사방이 고요하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나 트랙터의 엔진 소리만이 적막감을 깨뜨린다. 간혹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은 오히려 고요함을 지극하게 만든다. 땅이 쉬고 있다. 지난 봄·여름·가을 열심히 일해 준 땅이기에 차마 기침 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겠다. 땅을 바라보는 이런 마음은 옛 어르신들 마찬가지였는가 보다.
「제민요술」의 밭갈이 조에는 겨울철에 밭의 운용을 금하고 흙을 잠들어 쉬게 하라고 하였다. “초겨울이 되면 … 하늘의 기운이 위로 오르고 땅의 기운이 내려앉아서 천지간의 기운이 서로 통하지 않게 되어 이른바 서로가 폐색하여 겨울을 이룬다. … (지난) 농사일에 매였던 농부도 휴식하게 된다. 당정은 백성을 모아 음주를 하되 연령의 수순을 바르게 세우라 하였다. 한겨울에는 … 땅의 쓰임새를 일으켜서는 안되고 덮어 갈무리한 것을 열지 말아야 하며 밀봉한 실옥의 틈바구니를 열어젖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땅의 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아야 한다. 이는 천지간의 실방을 열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죽어서 사람들에게 반드시 질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땅이 쉰다고 사람도 마냥 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올 한해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지 작부 계획도 세워야 하고, 쉬고 있는 땅에 영양분(퇴비 등)도 공급해 줘야 한다. 지극한 보살핌이 있어야 그 보답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땅이 주는 고요함이 사람의 마음에도 평화로움이 깃들게 만든다. 쉼표 없는 긴 문장을 읽다보면 숨이 차듯, 쉼표 없는 삶도 숨이 차다. 땅이 쉬는 참에 농부도 잠깐 쉬어볼까 한다.
과식하는 염소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이 먹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들 한다. 아마도 이게 맞는 말일 것이다. 야생적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에 한해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들 중엔 과식하는 종이 꽤 있다. 특히 야생상태에서도 먹성이 엄청난 염소는 집에서 기를 땐 먹을거리를 잘 조절해 주어야 한다.
지난 주 농장에선 새끼 염소가 한 마리 죽었다. 도대체가 죽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염소 고기를 취급하는 건강원에서 염소를 보더니 배가 터져 죽었다고 한다. 자주 들르지 못한 관계로 못 먹게 된 토마토를 한가득 우리 안에 넣어뒀더니 그만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다 큰 염소는 그나마 먹는 양을 조절했지만 새끼는 배가 터져 죽을 지경이 됐는데도 계속 먹어댄 것이다.
원래 염소라는 종 자체가 먹성이 대단하다고 한다. 봄철에는 새순이나 새싹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겨울철에는 식물 뿌리와 나무껍질까지 갉아먹는다. 그러다보니 염소가 무리를 지어 있는 곳은 사막화가 이루어질 정도다. 한때 염소로 인해 무인도의 환경파괴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맹독성 식물인 투구꽃 등만 빼고는 모든 식물의 낙엽까지 먹어대는 바람에 섬이 황폐화 된 것이다.
이런 염소에게 먹이를 잔뜩 주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던 게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배부를 때 숟가락을 놓는 법을 알아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새끼 염소가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