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삼방재일월기-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며
흙살림
조회수 568회
14-03-25 01:17
본문
삼방재일월기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며
삼방리에 오던 날
지난 3월 낯선 이곳 삼방리 농장에 들어오는 날, 찬 바람 속에 눈이 흩날렸다. 눈은 텅 빈 논밭을 쓸듯 덮어가고 있었다. 기온도 떨어져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겨울 끝자락의 눈이라 여겼고 다가올 봄의 신호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다 그날 밤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온 땅과 나무, 집들을 내려 덮었다. 눈을 인 나무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찢어졌다. 첫날 밤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니 흰 눈이 마치 마당이라는 그릇에 가득 담아진 듯 쌓여있었다. 발이 푹푹 빠졌고 눈가래로 사람 다니는 길만 치웠다. 그렇게 이곳 농장일은 시작되었다.
"이런 날씨는 처음이네유"
그러나 눈과 추위는 4월이 되어서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봄이 아니었다. 봄은 생각처럼 가뿐이 와주지 않았다. 봄인줄 알고 꽃을 피운 복숭아, 사과나무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일찍 농사를 시작한 농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날씨가 5월까지 변화가 심했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맑은 날은 짧아서 시간을 잘 잡지못해 땅갈이조차 할 수 없었고, 모종 옮겨심는 시기를 잡지못해 걱정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여름이 되어서도 날씨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해서 감자, 옥수수 같은 여름 작물들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8~9월 이었다. 지겹도록 비가 내렸다. 덕분에 밤중 비소리, 바람소리를 실컷 들었다. 낮에도 내리고 밤에도 내리고 그쳤는가 하면 갑자기 어디서 숨어있다 몰려온 것처럼 소나기성 비바람이 몰아닥쳤다. 햇빛 보기 어려워 광합성이 턱없이 부족해 식물들도 제 앞가림 살길도 바쁜 탓인지 과수, 채소, 곡류 할 것없이 모두 열매가 부실하고 떨어지고 병해에 시달렸다. 흉작이었다. 8월에만 스무날이 넘게 비가 내리고 흐렸다. 고추는 여물지않고 탄저, 역병은 밭을 태우듯 통째로 집어삼켰다. "이런 날씨는 농사진 지 처음이네유. 아무리 그려두 이렇지는 않았슈." 평생 농사 지어온 노인이 말했다. 지구가 겪고 있는 해일, 태풍, 사막화, 폭염, 폭설 등 기후변화가 한반도에도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한 쪽에서는 한반도가 이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농사환경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쌀 농사를 지을까
날씨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때마침 올라온 태풍 '곤파스'는 엎친데 덮친 듯 비와 함께 거센 바람을 몰고 왔다. 이삭이 패 막 영글어가는 벼들이 바람과 비를 이기지 못해 쓰러졌다. 허리가 꺽이고 발목이 부러진 벼들이 이논 저논 여기 저기 누워있다. 3일을 논에서 일했다. 태풍에 쓰러지고 누운 벼를 서로 묶어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벼를 일으켜 세우는 논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농민이 게을러져서가 아닐 것이다. 해마다 떨어지는 쌀값에 의욕을 상실한 것일까. 쌀값이 한가마당 12만원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엔 14만원, 재작년엔 15만원이었는데 이 정부들어 쌀값이 매년 씨름선수가 상대 메다꽂듯 곤두박질 친다. 반면에 다른 생활소비재와 유류, 비료, 비닐 등 농자재는 반대로 해마다 올라간다. 큰 일이다. 수확기가 되면 쌀값이 더 떨어질까봐 걱정이어 농사지어봐야 헛일이다는 시름이 갈수록 깊어진다. 누가 쌀 농사를 지으려 하고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울까.

한때는 그랬지만
농민들은 항상 살기 힘들었다. 60,70년대 그래도 식량 자급자족을 외치며 농사 지을 때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소위 '녹색혁명'을 이루고 경제는 고도 성장을 자랑하지만 농민의 처지는 오히려 더 곤핍해졌다. 아이러니다. (통계도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현실은 통계수치보다 더 할 것이다. 지난 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10'은 농가의 '상위 하위간 소득 격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도시와의 소득격차'도 커져왔음을 적고 있다. 농가 상하위간 소득격차는 13년새 2배로, 도농간 소득격차는 95년에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95%였으나 2008년에는 65.3%에 불과해 농민처지가 지속적으로 추락해왔음을 보여준다. )
농부가 모처럼 시장에 나가 장일을 본 다음 식당에 들러 '소금, 고추가루, 깨'를 섞어 술 안주로 찍어먹었다던 지난 시절의 한토막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그 안주를 '복합비료‘라 불렀다. 흰색 소금, 빨간색 고추가루, 검은색 깨가 고루 섞였으니. ‘복합비료’ 안주를 먹고 있을 때, 옆 자리 공무원과 거간 유통업자들은 어지간한 안주를 상에 올려 놓았었다. 한 때는 열심히 농사짓고 벌면 번대로 땅을 사 농지를 넓혀보기도 했지만 자식 도시 보내 교육시키고 앞길 살펴주느라 논밭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땅도 나이들어 갈수록 짓기 힘들어간다.
<글:정혁기(한국농어촌연구소 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