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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재일월기-온 밤 내내 소쩍새가 우는 것은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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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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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재일월기
온 밤 내내 소쩍새가 우는 것은
하루 농장일을 마친 저녁 밤중에 종종 마루에 나앉으면 풀벌레 우는 소리로 마당이 가득하다. 찌륵찌르르 삐이비삐입 쩌저쩌쩌 쓰르르쓰르르...말과 글로 흉내낼 수 없는 수많은 소리가 실타래처럼 얽이며 들려온다. 끊어지지 않는다. 저마다 여기 이곳에 살아가고있음을 알린다. 계절이 깊어지면서 풀벌레 소리가 아주 많아졌다. 그 소리는 담을 넘지 않는다. 마당 안에 가득하다.
풀벌레소리가 밤에만 이런 건 아니다. 낮에도 그렇다. 밤에 풀벌레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캄캄해 귀가 민감해진 탓이다. 낮에 밭둑에 앉아 쉴 때면, 역시, 풀벌레 소리가 차있다. 잘 느끼지 못하고 듣질 못할 뿐이다.
듣건대 밤중의 소리는 소쩍새 울음을 따라올 수 없다. 해가 져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소쩍새가 소리를 시작해 앞산, 뒷산, 옆산 마을 어근방으로 옮겨다니며 온 밤 내내 운다. 봄에 울기 시작한 소쩍새는 처서가 지났건만 지금도 운다. 새벽 아침에는 내 언제 그랬냐는듯 그친다. 자주 듣다보니 소쩍새 음색에 익숙해졌다. 매양 비슷한 소리여서 한 마리 같다. 틀리다면 내 귀와 나이를 탓할 일이다.
소쩍새 우는 소리는 맑으면서도 공명이 있고 처량하게 들린다. 연암은 소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들린다 했지만 목소리마다 자신의 음색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저녁에 들어도 새벽에 들어도 술 취해 들어도 맨 정신에 들어도 독특한 음색이 있다. 소쩍새는 밤에 활동하는 새다. 밤과 어울린다. 밤이 되면 지금도 시골 마을에서 어렵지 않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긴 세월 산골 사람의 삶과 어우러진 새다.
소쩍새 울음은 두마디, 어떨땐 세 마디로, 또 가끔은 한 마디로 짧게 끊어서 운다. 김소월 시인은 ‘접동새’라는 시에서 소리를 "접동접동"이라고 적었다. "소쩍소쩍", 혹은 "솥적다", 가요에서는 "소쩌궁"으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소쩍새 울음에 얽힌 설화도 몇 가지 된다. 계모설화도 있고 가난한 빈농의 배고픔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소쩍새는 부엉이과에 속하는 가장 작은 새로 천연기념물이다. 소쩍새의 다른 이름도 많다. '접동새, 불여귀, 자규, 귀촉도, 망제혼, 두우' 등. 이름 하나하나마다 얘기꺼리가 담겨있다. 옛 문장가와 시인들의 글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졉동새(두시언해, 1481년), 졉동이(신증유합, 1576년), 자규(청구영언, 19세기)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많이 인용되기로는 고려때 문신 이조년(李兆年, 1269~ 1343년)의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절귀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서정주의 '귀촉도(歸蜀途)'라는 시도 빼놓을 수 없다.
밤이면 이산 저숲, 저산 이 수풀을 오고가며 울어대는 소쩍새는 그가 가진 야행성 생활습성으로 많은 인간들의 관심을 끌고 주제가 되어온 것 같다. 나는 듣고 생각하건대 그 첫대목에 하나 더 더하고 싶다. 많은 인간들이 소쩍새에 얘기를 보탰는데, 그리고 그 얘기가 소쩍새 울음을 인간의 삶과 관련지어서 삶의 양식을 풍부하게 해주고는 있지만, 복잡하게 전개되는 현대사회에서 현실감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오늘밤 소쩍새가 목울대를 울리며 캄캄 밤중을 소리로 새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 문화생활을 위해서 막개발이 자행되어 산림이 난도질당해 급격히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어 우는 것 같다. 삶터를 지키며 살아가기 힘들다는 가뿐 절규로 들린다. 그 울음을 문자로 어떻게 적을 것인가.
<글:정혁기(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