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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재일월기-벼가 좋더라
흙살림 조회수 561회 14-03-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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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좋더라
 
우렁이농법
5월 하순 모내기 이후로도 줄곧 밭일이 계속됐다. 심고, 캐고, 말뚝 박고, 줄 매고, 두둑 만들고, 물 주고, 비닐 씌우고, 부직포 덮고, 거름 뿌리고, 풀 뽑는 등 무던히 밭일을 했다.
그에 비하면 논 농사일은 물 관리외에는 논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제초 걱정은 논에 넣은 우렁이를 믿고 걱정은 내려놓고 있었다. 참으로 놀랍다. 논바닥이 평탄하고 물을 잘 대면 우렁이가 다니며 풀을 먹어 치운다.
종종 우렁이의 동태를 관찰해보는데 미끄러져다니는 줄만 알았더니, 벼를 타고 오르거나 낙하, 건너기도 한다. 우렁이의 하루 이동거리가 수백 미터가 된다니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일명 '우렁이농법'은 1992년 시도된 이래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우려가 일기도 했지만 그간의 경험 축적과 검증으로 잦아든 것 같고, 지금은 쌀농사를 짓는 많은 농가들의 친환경농법으로 자리잡았다.
 
벼를 가까이 두세요
흙살림 농장의 시험포장용으로 연구중인 4백여평의 논에는 우렁이를 넣지 않아 직접 들어가 풀을 매었다. 오랜 만에 논에 들어가니 생기가 돈다.
나는 수많은 식물 중 벼를 가장 멋진 식물로 생각한다. 이유는 주곡인 쌀을 거두어서만이 아니다. 그보다 자연그대로의 모습, 벼가 지닌 '자세'와 '혼백'을 좋아한다. 그는 참으로 곧고 단정하며 흐트러짐이 없으며 기상이 넘치고 평화롭다! 숙소옆 빈터 풀밭에 벼 31포기를 심어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두고 자라는 나날을 지켜본다. 단정하고 곧은 식물이다. 줄기와 뿌리는 한 움쿰 땅에 자립해 몸을 곧추 세우고 벼 잎은 깃대처럼, 창검처럼 솟아자란다. 피는 벼와 엇비슷한 외양이지만 완전 딴판이다.
보통 작물이 3~4개월 자라고 화초도 대개 화려한 일생이 길지 않은 편인데 벼는 생육기간이 긴 편이다. 볍씨를 4월에 뿌려 6월초경 모내기, 9~10월 수확하면 기간이 7개월이나 된다.
가정에서 마당과 베란다에 여러가지 관상용 화초와 채소류를 심고 가꾸는데 스티로폼 상자나 화분에 벼를 심어보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봄부터 가을까지 벼를 대하다 보면 다른 식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정서와 감흥, 마음의 교류를 경험할 것이 틀림없다.
벼는 어떤 곡물도 감히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영양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식물이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아서 앞으로도 인류의 식량자원으로 가장 중요한 작물이며, 생태, 환경, 경관적으로도 조화로운 작물이다.
농사문화의 원류는 한국
그러나 현실의 벼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매년, 특히 최근 수년간 쌀값은 계속 떨어져서 벼농사를 지을 마음이 없어져 간다. "지사 띠고 성주 띠면 남는게 없슈", "그럼 왜 짓죠?"  "돈 생각하면 쌀 농사 못해요. 그렇다고 땅 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가 돌아오는 대답이다. 벼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얼추 계산해 보았는데 참담하다. 다른 산업에서 생산비 계산에서는 빠지지 않는 농부의 '인건비'를 계산하지 않아도 그렇다. 그래서 논은 갈수록 인기가 없다. 이곳저곳 밭과 과수원 땅으로 바뀌는 논이 부쩍 많이 눈에 띤다. 논보다는 밭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벼농사 역사는 1만5천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약1만5천년 전의 볍씨가 출토된 때는 1998~2001년. 확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였다. 우리는 그 볍씨를 '소로리 볍씨'라 이름붙였다. '소로리볍씨' 출토이전까지는, 중국이 최고(最古)의 볍씨를 가진, 논농사의 역사와 농사문화의 원류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는데,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중국 옥섬암 유적 볍씨보다 4천년이나 앞선 볍씨가 출토되었으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나라 사람에게 '소로리볍씨'는, 외면당하고 대우받지 못했다.
 
찰방찰방 꾸루룩
물찬 논에 들어가 진 땅에 발을 담근다. 진 땅 속으로 발이 깊숙히 빠져 이발 저발 옮기며 허리 굽혀 엎드려 일한다. 한 발 두 발 오른발 왼발 빼가며 벼를 따라가며 두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김매기를 해나가면 찰방찰방 꾸룩 꾸루룩 발과 손이 진탕물 속에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뒤따라온다.
3일을 논에서 일했다. 첫째날은 100평이어 그런대로 할만했지만 둘째날은 만만치 않다. 청명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둥실 두둥실 떠가고 앞산에서는 종일 까마귀가 울어쌌는데 바람은 자고 볕은 뜨거웠다. 앉아 쉬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뽑아야 할 논의 길이 멀었다. 난 벼를 좋아하고 밭보다 논에 들어가면 반가워 훨씬 기껍지만 하루 더 피사리 일을 하자하면 이유를 대 미룰 것 같다.
한 여름 들판을 푸르게 덮은 논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잠자리 날고 메뚜기도 출현했다. 여름 열기 한가운데 가을이 이미 들어와 있다.
<글:정혁기(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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