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삼방재일월기1]온 몸으로 느끼는 삼방리 농장의 봄
흙살림
조회수 504회
14-03-25 01:16
본문
온 몸으로 느끼는 삼방리 농장의 봄
흙살림 신문에 농업?농촌과 관련 다양한 글을 연재하시던 정혁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께서 지난 3월부터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에 위치한 흙살림 유기 토종농장에서 농사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앞으로 이곳 삼방리 농장에서 봄부터 겨울까지 이곳에서 일어나는 농사와 자연 이야기, 계절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가는 주변 산하와 일하고,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삼방재 일월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삼방리 농장의 본격적인 농사준비
3월, 4월 봄철을 시골에서 몸으로 느끼며 지낸다. 도시에서 만난 철과 확실히 다르다. 온방시설이 당연지사인 사무실 대신 야외에서 일하면서부터 바람과 날씨를 숨으로 피부로 느낀다. 바람을 맞고 흙을 만지니 손이 조금씩 거칠어져가고 피부도 까칠해져가는 듯 하다. 봄볕에 얼굴도 검어졌다.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싫지 않다.
3월 중순 농장 일을 시작한 이래 날씨가 무척 변덕이 심했다. 갑자기 눈이 오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가 하면 바람 불고 사이사이 비가 내렸다. 낮에도 해가 기울면 기온이 떨어졌다. 저녁, 아침에는 기온이 더 떨어졌다. 철은 대동강 물이 풀리고 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우수(2/19), 경칩(3/6)을 지나고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3/21)을 거쳐 청명(4/5)도 지나왔건만 여전히 변덕스러웠다. 그래도 시간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어서 지그재그 걸음으로 한발 한발 봄의 나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몸도 조금씩 잘 적응해 가고 있다. 농사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삽질, 가래질, 운반작업, 거름뿌리기, 구덩이 파고 둑 만들기 등 이어지는 작업으로 발목과 무릎, 요추 부위가 쑤셔 와 혹 탈이 났나 말 못하고 걱정했는데 어느 날부터 통증이 사라졌다.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니 몸이 적응하느라 일어난 일이었다.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농사일에 적응하는 데까지는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몸이 그런대로 적응해 주고 있다.
겨울처럼 매섭지는 않지만 심술부리듯 변덕스러운 춥게만 느껴지는 봄 날씨는,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걸음을 걸어오고 있었다. 3월에 가래로 도랑을 치니 미꾸라지, 도룡뇽이 삽날에 떠올려진 흙 속에 드러나곤 했다. 건드려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데 없는 삽질에 땅속을 벗어나 내발겨졌으니 이들에게 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봄은 오고 있었다. 겨울을 이겨 지내고, 어떻게 봄이 오고 있음을 느껴 알게 되는지 난 신비스러울 뿐인데, 여기저기 식물들이 삐죽히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나갈 때가 분명 왔구나'고 느껴 알게 되자마자, 수목들이 잎을 피우고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산수유가 노란 기별을 내자 냉이가, 꽃다지가 서두르듯 늦은 듯 작은 꽃망울을 올렸고 이어 개나리가 마중하고 민들레와 진달래가 합창해 왔다.
봄은 놀랍다.
생명에는 강인한 힘과 멈추지 못하는 속력이 있고 어울림이 있다.
식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새벽닭이 차게 울고 개들이 닭소리가 거슬린듯 컹컹 짖는 소리 말고는 괴괴하더니 어느날 새벽부터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새들이 봄 무대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봄을 가장 아름답게 전달해주는 전령들인 걸 알았다. 새에 대해 아는 게 적어 일일이 이름을 알 바 없지만 아침이면 마당앞 나뭇가지, 지붕 끝에 앉아 울음을 울었고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소리가 낭창낭창 탄력이 더해갔다.
이들에게는 봄은 그야말로 환희일 것이다. 겨울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혹독한 겨울을 살아 견뎌내고 추위와 먹이의 고난의 시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봄날이 되어 아침해를 맞이하는 것은 기쁨이니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요, 목소리를 힘차게 가다듬어 짝을 찾아 알뜰하게 살림을 차릴 일이요 보송보송 솜털 어린애낳아 후손을 이루어갈 일이다. 봄은 생명의 유일한 기회다.
사람사는 모습은 이들에 견주면 참으로 호화스럽다. 잠자는 바닥엔 온방시설이 되어 등을 지질만큼 따듯이 지내고 찬바람도 온풍기, 히터로 데워 지내니 겨울은 이제 겨울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이라면 동래불사동이라 할 만하다. 사람의 수명이 100세 가까이 되도록 늘어난 것도 온방이 기여한 바가 클 것이다.
그러나 나무와 풀, 새들이 겨울을 이겨내 봄을 노래하는 데에는 추운 겨울이 있기 때문일 지 모른다. 낮에 일하러 나갈 때나 일할 때나 밭둑에 앉아 쉴 때나 앞 산이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 산 색깔이 제법 많이 달라졌다. 산 빛이 하루하루 달라져 간다. 땅에서는 새싹 잎이 움터 올라오고 나무가지에도 물이 오르기 때문이다. 짙은 흑갈색이던 산이 암갈색으로 변해오더니 이제 봄빛이 들고 있다. 땅엔 풀들이 솟아 연초록색을 바탕 깔고 여기다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가 노랑을 더하고 진달래가 빨강을 점점이 찍으니 빨노초 색의 3원색이 배어들어 산 빛이 고와져간다. 산 빛이 물들어간다.
<글:정혁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이 자료는 비상업적인 용도를 위해 인용, 복제할수 있습니다. 다만, 출처(출처:흙살림 http://www.heuk.or.kr)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라며 개작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