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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원로에게 듣는다 - 김용길 전 감물 신협 이사장
“우리 직업이 뭔지 알아? 나는 풀을 깎는 사람, 아내는 풀을 뽑는 사람.”
김용길 선생(71)의 농담 섞인 자기 소개가 유기농업의 고됨을 잘 나타내주는 듯하다. 김 선생은 1980년대부터 충북 괴산 지역에서 충북육우개발협회와 충북농촌개발회,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등 농민 운동에 앞장 서 오면서 친환경 농업을 지속해왔다. 최근 친환경 유기농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나서는 “원리와 원칙을 저버려서는 절대 친환경 유기농업을 지속할 수 없다”며 바른 길을 걷는 많은 농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소망했다.
■ 유기농, 겁을 내며 시작하다
김용길 선생은 현재 충북 괴산군 감물면 백양리에서 5,000평 남짓 농사를 짓고 있다. 원래 이곳은 눈비산 재단에서 목장 부지로 쓰던 곳이었다. 소 200마리와 인부 60명이 활동하던 목장을 정리한 자리에 객토를 하고 돌을 주워가며 밭을 만들어갔다. 축사로 쓰던 곳은 콘크리트 바닥이라 이것도 다 걷어내야 하는 등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생 땅에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다. 각오는 단단했지만 속마음은 겁으로 가득했다. “당시 아들딸 세 명이 모두 대학생이었어. 농사 한 번 망치면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었지.” 그래도 사명감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물론 초기엔 그 결과가 참담했다. 깨도 안되고 옥수수는 기형이 나오기도 했다. 고추는 아예 절단이 났다. 목표치에 도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겨우 겨우 빚으로 꾸려간 삶이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소 10마리를 대부받아 키우기도 했는데 오히려 소 값 폭락으로 고생했다.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인삼밭을 일구고 사슴, 꿩 등을 키우기도 했다.
■ 동반자, 흙살림을 만나다
김 선생은 풍성한 수확의 달콤한 맛보다는 고된 노동의 쓴 맛만을 삼켰지만 친환경 농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1990년 현 이태근 흙살림 회장과 함께 일본 연수를 다녀오면서 유기농에 대한 각오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당시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친환경 닭 사육과 유정란으로 유명한 야마기시 농장(산안마을) 등 유기농 관련 농장을 견학하고, 공동체를 통한 유통을 보면서 큰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음해에는 괴산미생물연구회(흙살림 전신)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흙살림과의 인연을 지속하게 됐고, 이 인연은 유기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주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마땅한 친환경 퇴비도 유기농자재도 없던 시절, 흙살림이 균배양체를 생산하면서 땅심을 살려 친환경 농사가 다소 수월해졌던 것이다. 이후로 흙살림의 유기농자재가 새로 나오면 농장에서 직접 시험해보며 유기농업을 확대해갔다.
그렇다고 미생물 자재들을 마음껏 뿌려대지는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쓰다보니 효능을 본 것이다. “사람이 아플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완벽한 약이라든가 특효약이란 것은 없어. 그저 예방 차원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지. 약을 줄이니 병충해도 오히려 줄어들었지. 욕심내면 안되는 법이야.”
■ 판로, 걱정이 없다
“우리 흙은 꼭 갓난아이 살처럼 부드러워.”
친환경 농사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부부가 서로 격려를 해주며 버텨온 게 어언 30년. 이젠 자신감도 조금 붙었다. 예전엔 생계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순환농법을 위해 소도 10마리 키우고 있다. 감자·옥수수·브로콜리·콩·고추·배 등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옥수수는 풀이 자라도록 놔두었다가 수확할 때쯤 한 번 자를 뿐이다. 풀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다보니 지금도 주위에선 “내가 농약 쳐줄까요. 뭘 그렇게 힘들게 해요?”라며 걱정을 해준다. 그래도 이런 걱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확한 농산물이 맛있다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판로 걱정을 한 번도 안해 봤어. 우리 농산물을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다시 찾으니까. 더군다나 형제, 친척, 친구들한테 소개도 해주고 선물로도 많이 보내주니 오히려 모자랄 지경이지.”
농산물을 수확할 때가 되면 아예 김 선생 농장으로 찾아오는 소비자들도 있다. 하루 묵어가며 농사일을 도와주고 직접 농산물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다보니 가능한 일이다. 김 선생은 이런 소비자들을 볼 때마다 유기농에 보람을 느낀다.
“친환경 재배법이나 노하우라는 게 딱히 없어. 원리, 원칙만 지킬 뿐이지.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 그러다보면 좋은 농산물을 수확하고 또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지. 유기농을 하다 보니 더불어 사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래도 김 선생은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바로 농업의 생존이다. 농업이 살려면 친환경이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풀과 작물이 어우러진 김 선생의 농장을 나오며 김 선생의 걱정이 조만간 사라질 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이방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