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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 원로에게 듣는다 _김동진(영주시 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흙살림 조회수 848회 14-05-1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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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듣는다 - 김동진 영주시 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충북 괴산에서 경북 영주로 가는 길에 사과꽃이 한창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사과꽃이 많이 달리지 않은 모양이다. 60년 가까이 사과를 재배해 오신 풍기읍의 김동진(74) 선생도 날씨 탓에 점점 농사짓는 게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다. “예전엔 5월에 꽃이 피었는데…. 이상기온으로 맨 처음 핀 꽃은 다 죽었다. 그 다음 나온 꽃들이 수정이 되는 것 같다. 농사가 더 어려워진다. 이것도 다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김동진 선생의 토로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알게 됐다.
 
■ 농약에 쓰러지다
김동진 선생은 12세 때부터 남의 인삼밭에서 일을 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일을 하다보니 앞으로 사과가 유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5세 때부터 사과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농약도 없었고 화학비료도 귀한 시절이었다. 산에서 풀을 베다가 인분과 오줌을 섞어 퇴비를 만들어 사용했다. 아궁이 부엌에서 나오는 재는 비료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점차 농약과 화학비료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나방류의 벌레 피해를 농약으로 막을 수 있다보니 농가 소득도 많이 올라갔다. 농약처럼 편한 게 없었다. 하지만 24세 때 일주일간 파리치온이라는 농약을 쳐대다 픽 하니 쓰러지는 일을 당했다. “당시엔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했지. 무려 사흘 만에 깨어났어. 농약이 두려웠지. 하지만 별 수 있나. 농약 안 치면 농사 못 짓는 줄 알았는데 그냥 쳐야지.”
■ 빚이 빛이 되다
젊었을 적 한창일 때 사과농사를 2만 평 넘게 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어느 한 해 사과가 계란만 해졌을 무렵 우박이 비처럼 쏟아졌다. 1톤 차 짐칸을 가득 채울 정도로 쏟아졌으니 남아나는 사과가 없었다. 그동안 들어간 농약과 비료 값이 엄청나 빚만 잔뜩 졌다. 거래를 하던 농자재 가게들이 등을 돌렸다. “농약가게를 하던 친구 아들마저도 매정하게 굴더군. 올 연말에 갚을 자신 있으면 농약을 가져가라고. 차마 농약을 들고 나올 수 없었어.”
좌절의 기간이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 고민하며 날마다 기도했다. 그러던 중 꿈결에 이런 소리를 들었다. “네 어릴 때 농약 있었나? 어릴 때처럼 키우면 되는데 왜 걱정하느냐.” 목소리를 듣고 생각해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을 여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냥 어릴 때처럼 키우면 되는데 옛날 생각을 못한 것이다. 이때부터 친환경 농사를 무작정 시작했다. 어렸을 적 경험이 있었기에 겁을 내지도 않았다.
■ 배우면서 일어서다
김 선생은 사과 재배를 남이 가르쳐 준대로만 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 영주에는 사과 전정기술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대구에 사는 최진관 씨라는 분이 일본서 전정기술 자격증을 따 와 가르쳤다. 김 선생은 기술을 배우고 싶어 조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다 하루는 “선생님, 힘드실텐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며 가위를 들었다. 선생이 가르쳐 준 몇 가지 기술 이외에 자신이 평소 공부하며 생각한대로 전정했다. 야단 대신 칭찬을 들었다. 선생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알아서 척척 전정을 한다며 놀라워했다. 그 이후론 김 선생이 영주는 물론 그 일대와 강원도까지 돌아다니며 전정 작업을 도맡아 했다.
친환경 사과 재배도 마찬가지였다. 석회유황합제와 석회보르도액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경험을 통해 석회유황합제를 만드는 통도 드럼통에서 100% 스텐레스로 바꿔 약성도 높였다. 또한 보통 80% 석회와 99.9% 유황분말을 사용한 유황합제가 1년 뒤엔 밑바닥에 응고된 것을 보고 95% 식용 석회를 사용해 이를 방지했다.
한편 김 선생의 사과농장은 고도가 높아 일조부족과 낮은 온도로 인해 사과가 고르지 못했다. 그러자 선생은 전국의 사과 박사들을 찾아다니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지온을 높여보라는 충고를 듣고 미국에서 수입한 미생물 ‘아제로’를 개똥에 넣어 발효시켜 한 고랑만 시험 재배해봤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과가 고르게 나온 것이다. 여기에 흙살림의 ‘활인산’을 활용하니 땅이 더 살아났다. 모두 다 스스로 공부하며 터득한 것이다.
■ 에덴 동산을 지켜라
김 선생의 농장은 소백산 기슭 해발 650~700미터에 위치해 있어 장마철엔 안개가 낀다. 이 안개로 인해 갈반이 생겨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무농약을 시작하면서 갈반이 생기지 않았다. “열매와 씨 맺는 채소는 인간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땅에 쓰면서 망가뜨린 거야. 땅을 살려야 해. 농촌진흥청에서도 내 땅이 최고로 좋은 땅이라고 평가해.”
실제 김 선생의 농장은 풀 천지다. 1년에 한두 번 예초기로 풀을 잘라줄 뿐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그 밭에서 다양한 풀이 자라야 심신나방이나 순나방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피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단그라스나 크로바와 같이 한 가지 작물만 밭에 심는 것을 반대한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땅엔 전지한 가지를 그대로 버려두어도 1년 뒤엔 완전히 삭아버린다고 한다. “땅이 좋아지니까 소화능력도 좋아진 거야.”
비록 빚더미 덕분에 시작한 친환경농업이지만 이젠 소신도 생겼다. “성경 창세기엔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말이 있어. 에덴동산을 지키려면 사람 펀하자고 농약 치고 제초제 쳐선 안되는 거지.” 이런 사명감에 환갑 때부턴 친환경 농자재 사업도 시작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대신 친환경농자재를 통해 땅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 겁내지 말고 도전하라
현재 전국 과수 재배 농가 중 유기농 농가는 그리 많지 않다. 김 선생은 “무농약 3~4년 차가 제일 어려워. 충피해가 최고조로 이르기 때문이지. 그걸 못 넘기거나 자신이 없으니까 유기농으로 못가는거야.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꿔봐. 충 피해가 생기면 어때. 그건 주스용으로 쓰면 되잖아. 왜 생과만 고집하냐”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도전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하나. 김 선생은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농약을 언제 치고 제초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다보면 농약을 안치면 불안해져 유기농은 꿈도 못꾼다는 것이다. 현행 친환경제도도 문제라 생각한다. “GAP를 봐봐. 농약도 제초제도 다 쓸 수 있는데 우수농산물이야. 이래서야 되겠어. 농사 쉽게 짓자는 것밖에 더 되겠냐고. 마음만 바꾸면 되는데 이걸 못해.”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고도에 따른 확대 정책이다. “‘해발 500m 이상은 무농약으로 해라’ 이렇게 정부에서 연구하고 지시하면 좋겠어. 그래서 점차 평지까지 확대하는 거지.”
김 선생의 친환경에 대한 애정은 이제 영주로 귀농한 젊은 농부들에게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올 연말엔 농장에 교육장도 들어서 유기농 사과 전문 인력이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 기대된다. 글 이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