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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 원로에게 듣는다4 - 조성용 전 햇살아래 공동체 대표
흙살림 조회수 909회 14-04-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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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맨십으로 농사를 지어라”
 
“이게 47년 된 사과나무야. 결혼하기 1년 전에 심은 거라 수령을 확실히 기억하지.”
조성용(경북 상주·75) 선생이 가리키는 사과나무는 둘레가 한 아름이나 되지만 구멍이 크게 나 있다. 새가 집을 짓고 산 탓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 이런 건강함은 사과밭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여기봐, 여기. 이건 고라니 똥이야. 애들이 어린 사과나무 잎을 먹는 바람에 작년에 심어놓은 게 영 자라질 못해.” “이건 두더지 흔적이야. 애들도 적당히 있으면 땅에 공기도 통하게 해주고 좋은데 너무 많으면 뿌리를 상하게 해 골치지.” 조 선생은 사과밭이 피해를 입고 있어도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나셨다. 야생동물들이 주는 피해에 눈을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신명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 몸서리 치게 만든 제초제
조 선생은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은 아니다. 농사를 잠깐 짓다 서울 생활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귀농인이다. 서울 생활하기 전엔 사과나무와 함께 닭도 키웠다. 아무런 경험도 없이 책을 보면서 병아리를 1000마리까지 키워냈다. 자신이 잠을 자는 방에다 달걀을 두고 부화시킬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서울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소를 키웠다. 하지만 빚만 지고 말았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예전에 키워봤던 사과나무였다. 당시 밭에는 소를 키웠던 덕분에 온통 소똥이었다. 또한 지렁이도 천지였다. 여기에 토종닭 몇 마리를 방사했다. 닭들은 경운기가 지나가면 그 뒤를 쫓아다니며 땅위로 드러난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왔을 땐 풀들이 너무 무성해 제초제를 뿌렸다. 제초제를 치면 풀에 있던 벌레들이 뛰어나온다. 그러면 또 닭들이 쫓아와서 주워먹었다. 제초제 영향을 받았을텐데 닭도 건강하고 알도 잘 낳았다. “닭들을 보면서 제초제 먹어도 괜찮구나 생각했지. 내 자식한테도 제초제가 묻었을지 모르는 사과를 서슴없이 줬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태어났는데 이중 80% 정도가 기형이었다. 고개를 못 들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병아리가 태반인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어. 그냥 우연인줄 알았지. 그런데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병아리들이 계속해서 기형인거야. 그제서야 제초제 때문이라는 걸 알았지. 작은 동물인 닭이 먼저 당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중엔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섬뜩했지.”
 
■ 박수 치게 만든 친환경
제초제와 농약을 치지 않고 사과나무를 키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때 도움을 받은 곳이 막 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한 한살림이었다. 하지만 친환경 농업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시기였기에 수확의 결과물은 썩 좋지가 못했다. 사과는 작고 맛도 없었다. 배추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고 질겼다. 대파는 대파라는 명함 대신 쪽파라고 소개해야 할만큼 작았다. 그래도 한 살림 회원들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회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등을 직접 찾아가 소리치며 농작물을 팔았다.
“회원들 덕분에 눈물이 날 정도였어. ‘우리가 이런 친환경농산물을 안 팔아주고 안 먹으면 농민들은 생산을 못한다. 친환경농업은 영원히 없다’면서 두 개, 세 개씩 사 주었지. 친정집, 친구들에게 선물하겠다면서 말이야. 그야말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 셈이었지.”
이즈음 흙살림도 유기농 퇴비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힘이 되기 시작하였다. “균 배양체 냄새를 맡는데 너무 좋았어. 춤을 췄지. 비오기 전날 다 뿌리고 다음날 곰팡이가 뽀얗게 피어난 걸 보면 농사가 잘 되든 못되든 기분이 최고였어. 당시엔 이런 좋은 퇴비를 공급해주는 데가 없었거든.”
 
■ 많이 알면 농사 못 지어
유기농 퇴비가 나오면서 콧노래를 불렀지만, 농사가 퇴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퇴비만 넣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10년 동안 실패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안해야 되는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농사를 짓는 것도 이 사자성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조 선생의 생각이다. “지금은 과잉 때문에 죽어가는거야. 거름도 자꾸 많이 넣으면 안된다고. 뭘 넣었다고 더 바라는 것도 잘못이고. 땅은 주인 모르게 살아나는 거야. 아미노산 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술도 독하면 쓰러지잖아. 희석을 조금만 해서 진하게 준다고 좋은 게 아니라고.”
조 선생의 이 지나침에 대한 경계는 사람의 마음으로도 향한다.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 잔류농약 성분을 검사하는 245가지를 제외한 약제를 써서 농사짓는 ‘머리 좋은’ 사람들을 경계한다. 오히려 ‘무식한 것’이 농사짓는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도 전지 작업을 할 때 어디를 잘라야 할지 잘 몰라. 가지에 상처를 낼 때도 이쪽 저쪽 시험해 보는 거지. 나무 속을 어떻게 알겠어?”
그러고보면 조 선생의 농사짓는 마음은 스포츠에 가까운 듯 하다. “스포츠맨십이란 게 뭐야. 바로 정직함과 도전 아니겠어. 남을 속이지 말자. 내 몸으로 부딪혀보자. 이런 정신으로 친환경농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거야.” 글·사진 이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