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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희(청주) - 올곧은 농부, 토종 농부의 길을 걷다
흙살림 조회수 574회 14-03-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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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현장 속으로(5)-홍진희(청주)
올곧은 농부, 토종 농부의 길을 걷다
농대를 졸업하고, 농사짓는 아버지 일을 도와주다가 건강한 먹을거리와 땅을 살려보자고 농부의 길을 시작한 사람, 홍진희(43) 씨는 차분하다. 생각이 올곧다. 생태적인 삶을 자신의 가슴에 화인처럼 각인시키고 매년 무엇을 해야 생각을 곧게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 그는 농부의 길을 후회하거나 잘못 들어섰다고 타박한 적이 없다. 자신을 믿는 사람, 그의 길이 유기농업 본류다.

“제 자신에게도 자주 다짐하는 이야기지만 유기농업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해나가야 할 농업입니다. 우리들 세상을 위해, 우리들 뒤에 올 아이들 세상을 위해, 또 그 이후에 이 땅에서 살아갈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사명입니다.”
논농사 700평과 임대한 땅 1,600평 비가림하우스, 노지 3,000평에 방울토마토와 토종오이 농사를 짓고 있는 홍진희 씨는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이 많다. 토종으로만 농사짓고 싶은 생각과 시설을 떠나 노지에서만 유기농사를 짓고 싶다. 그래서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옥산 원사정마을에 10년 장기로 땅을 빌렸다. 토종 채종포도 만들 생각이다.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은 그의 말을 빌리면 느닷없이 찾아왔다. 옛부터 농부들은 씨를 받아 농사지었는데 자신의 농사를 지어보니 해마다 씨앗을 사다가 쓸 수밖에 없었다. 씨를 받아 해보았으나 원형이 나오지 않고 상품성이 없었다. 종자회사에서 약품처리를 한 때문이다. 농부는 종자를 받는 게 기본이다고 생각하다가 토종연구가인 홍석화 씨를 만나 조언을 듣고 재래종자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다. 먼저 오이와 파에 도전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7년 정도 토종오이에 도전해보니 일반 마디오이 정도까지 수확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 농사짓는 면적의 60% 이상을 재래종자로만 썼다. 앞으로 전체 면적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수확량은 오이는 일반종자의 80%까지 따라갔고 파는 60%까지 나왔다. 전량 한살림으로 출하를 하는데 먹어본 회원들이 맛이 다르고 맛좋다는 반응이 나와 가능성도 확인했다. 한살림에서는 수확량이 떨어진 토종오이값을 개당 100원 정도 보전을 해주었다. 토종오이는 짧고 통통하다. 무게는 일반오이보다 1.5배 이상 더 나갔다. 잘 안 무르고 아삭아삭 맛이 독특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7년여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옥산 원사정의 산간마을에 사는 할머니에게 모종 2개를 얻어다가 씨앗 받을 생각으로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첫해는 늙혀서 씨를 받아 넓은 면적에 심었다가 4년째 되던 해 처음 밭에 심었는데 색깔이나 모양이 상품성이 없었다. 들쭉날쭉했다. 벌이 날아와 수정을 해서 그런지 씨가 섞인 것이다. 그래서 색깔이 진한 쪽으로 육종을 해서 선별해서 씨를 받아야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안 좋은 것은 잘라버리고 씨 받을 것만 표시해서 가운데 줄기에서 수확해 오이의 끝은 잘라버리고 중간부분에서만 씨를 받았다. 첫 경험한 이런 과정이 참 흥미로웠다. 그러나 집에서는 갈등이었다. 수입이 없었으니 말이다. 한살림이 홍씨가 요구하는 가격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금은 어느 정도 토종오이에 대해서는 정착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 토종오이는 4년째 심는 것으로 채종한 지 8년 만에 어느 정도 결실을 보았다. 토종오이는 10화방까지는 주지만 키우고 20화방까지 키운 주지를 적심하면 그 사이에서 측지가 많이 나와 열매가 많이 달린다.
홍씨는 이곳이 고향이다. 91년 학교 졸업하고 아버지 일을 거들면서 농사를 시작했으니 농사지은 지 17년나 되었다. 학교 마치고 엉망진창인 세상에 대한 끓어오르는 마음만 갖고 농사를 시작했다. 데모도 많이 다녔다. 농민회 충북도연맹 간사를 1년 하면서는 농민과 세상을 보는 농익은 눈도 익혔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도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은 농부였던 게다. 그런데다가 농약도 치지 않고 농사짓겠다고 하니 마뜩찮았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도 홍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처음엔 수박농사를 관행으로 지었다. 2년째부터는 청주한살림 오상근 상무를 만나 무농약에 도전했다. 몇 차례 농약을 뿌리지 않고 화학비료를 줄여서 농사를 지었지만 그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흙을 건강하게 살리고 가꿔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배웠다. 그러나 좋은 퇴비를 장만하는 일도 농약 없이 병충해를 막아내는 일도 암담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과학기술을 활용해 토양미생물을 연구하는 흙살림을 만나면서 희망을 갖게 되었다. 2000년에 농관원에서 유기인증을 받았고 노지는 흙살림인증을 받았다. 5명의 농부가 꾸려나가는 한살림청주시유기작목반 대표로 있다. 작목반에서는 주로 잎채소 20여 가지와 과채류로 수박, 토마토, 방울토마토를 생산한다.
토양관리는 흙살림균배양체 위주로 쓴다. 평당 1.5~2kg 넣고 쌀겨와 깻묵도 평당 0.5~1kg 넣는다. 토양분석을 해서 부족하다 싶은 것 위주로 넣고 기초퇴비의 양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과채류 상토는 직접 만들어 쓴다. 15년째 심고 있는 방울토마토는 인산성분을 높이려고 짚썩은 퇴비 100kg와 쌀가라지에 황토흙 60%, 소똥먹인 지렁이똥 40%를 섞고 숯가루15kg, 일라이트 30kg, 패화석40kg, 미생물로 VA(균근)균 2kg를 혼합해 잘 부숙시켜 쓴다.
액비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는데 막걸리공장에서 가져온 무살균탁주(효모균)와 당밀을 넣어 발효시켜 주거나 생선아미노산 1000배, 청초액비 500배를 자주 준다. 방울토마토가 달고 신맛이 나는 것은 액비 덕분인 것 같다고 전한다. 포트 이식 후에는 생선아미노산을 약하게 주고 정식후 저온기에는 거의 안주다가 열매 맺히고 따뜻해지면 자주 준다. 오이는 2~3일에 한번씩 준다.
성장관리를 위해 다양하게 실험을 한 편이다. 작년부터 천적인 콜레마니진딧벌을 넣고 세심히 관찰을 해보았는데 토착천적인 칠점무당벌레와 남생이무당벌레도 많이 생겨 진딧물과 응애는 줄였다. 하우스 양옆으로 쑥이 많이 났었는데 그 쑥이 수염진딧물의 먹이가 되어서그런지 토착천적이 더 많이 생겼다. 그래서 올해 일부러 쑥을 베지 않고 키우고 있다. 하우스 안이지만 물이 고여있고 풀이 자라서 천적을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병충해는 예방차원에서 해로운 균을 잡아먹는 방선균을 토양내에 많이 배양하려고 하고 있다. 낙엽이나 짚, 균배양체, 게껍질을 많이 투입하고 있다. 작년에 청고병이 와서 고생했는데 흙살림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토양내 해로운 균을 잡아먹는 푸른곰팡이균이 있는 팽이버섯배지를 바닥에 전면적으로 넣고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 충해는 잎살림2,3,4호로 잡고 있다. 지난해에는 천적이 민감해서 아무것도 안 뿌렸다.
방울토마토는 2년 전에야 한살림 약정량을 맞출 수 있었고 지난해는 70%밖에 못 맞추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실험하고 실패하느라고 어려움이 많았다. 최근 몇 년간은 수입이 나아져 빚도 갚고 현상유지는 한다고 털어놓는다.
지금도 마음만은 노지에서 농사짓고 싶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온전하게 생태적으로 살아보고 싶지만 가족생계문제도 걸리고 하우스 농사지역인 이곳 지리적인 조건도 많이 걸리고 한다. 대도시 청주인근이라 개발의 바람이 많이 불어 고민도 많다. 하지만 재래종자가 시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한다.
다행스럽게 청주, 청원지역을 아우르는 원사정마을을 생태마을로 변모시킬 계획이다. 논농사와 밭농사, 친환경적 축산을 병행할 수 있는 이곳 청정한 산간마을인 이곳은 노인들과 빈집뿐이다. 이곳에서 한살림 미호천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토종농사를 통해 작은 희망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84년부터 20여년 동안 우리 농업을 지켜본 느낌을 말해 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밝은 표정으로 바뀐다. 객관적인 농업조건은 어려워졌지만 삶의 내용을 바꾸고 시작하니까 어느 분야보다 새로운 영역이 많은 곳이 농업이라는 것이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가장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농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되살려야 하는 일도 농업, 농촌, 농사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정부 성토도 선이 굵다. 시설이나 전업농에 자금 지원한 정부지원이 농업을 망쳤다는 것이다. 규모가 적더라도 소농과 가족농, 작은 마을단위에 지원할 것을 적극 희망한다. 그래서 소농과 마을단위의 힘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안 보인다고도 말한다. 정부 지원도 기술과 자재에 한정된 지원이 아닌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터전, 이를테면 복지, 의료분야의 지원도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부인 류근옥 씨(40)와는 미원에서 농사지을 때 만나 결혼해 초등학교 6학년 딸 이서와 1학년 아들 지후를 두었다.
그의 소망은 줄곧 농민이 사람대접 받는 쪽으로만 향한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존중되기를 바랍니다. 속은 병들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속속들이 풍요로워지고 건강해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게 자라 살찐 알곡처럼 말입니다.”
그의 소망이 무럭무럭 자라, 그의 소망대로 신념을 갖고 사는 올곧은 사람의 삶이 또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사람에게서 받는 희망만큼 감동인 게 또 있을까. <취재 : 이우성>
2007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