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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농가 소개 – 권구영 괴산 토마토 대파
‘부지런함’이 친환경 농사의 비법
“농사 잘 짓는 비법요? 그런 건 없습니다.”
40년 가까이 흙을 만져왔고, 그중 20년의 세월을 친환경 농사에 바쳐온 베테랑 농부 권구영 씨.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크게 실패한 경험 없이 꾸준하고 평탄하게 풍성한 작황을 유지해 온 비결을 묻자, 그에게선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그는 엷은 미소와 함께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슨 농사든 그렇겠지만,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거든 남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의 치열하고도 정직한 농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부지런함’이라는 단어가 품은 묵직한 무게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맨땅에서 헤딩하듯 시작한 친환경
현재 하우스 4,500평과 논 1,500평을 일구고 있는 권구영 농부의 터전은 모두 까다로운 유기농 인증을 받은 곳이다. 그가 처음 친환경의 길로 들어선 것은 지난 2010년경이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던 동네 동생의 권유로 노지 감자 농사부터 겁 없이 시작했다. 흙살림에서 친환경 인증 교육을 이수하자마자 곧바로 무농약 인증을 신청하며 친환경 농업에 뛰어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처럼 쓸 만한 친환경 농자재가 아예 없던 시절이었어요. 유기농으로 배추를 심었는데 밀려드는 귀뚜라미 떼를 감당할 길이 없었죠. 고추 농사는 아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천연 살충제를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종합 살충제로 쓰기 위해 백두옹(할미꽃 뿌리)을 가마솥에 삶아 우린 물을 살포하고, 진딧물을 잡으려 돼지감자싹을 달인 물을 밭에 뿌렸다. 하지만 들어가는 엄청난 공력과 시간에 비해 효과는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해충과의 지난한 싸움 속에서 지쳐갈 무렵, 흙살림을 비롯한 전문 기관에서 검증된 친환경 살충제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흙살림의 친환경농업자재인 ‘충식이’를 비롯한 맞춤형 자재들을 손에 쥐면서 비로소 그의 친환경 농사도 큰 시름을 덜고 수월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내 몸을 살린 농약 냄새의 기억
사실 그도 처음부터 친환경 농부였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관행 농업을 하며 화학농약과 제초제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농약을 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몸의 이상 신호들이 그를 괴롭혔다.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스러웠던 농약 냄새의 기억이 그를 친환경 농업으로 이끈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내 몸이 먼저 망가지는 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키운 농산물이 다른 사람에게 좋을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내 몸에 편안하고 좋은 농사라면, 내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들에게도 당연히 약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마음 하나가 있었기에 긴 세월 친환경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다.
순환하는 흙을 만드는 법
지치지 않는 유기농 토양을 유지하기 위해 권 농부가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은 ‘윤작(돌려짓기)’이다. 대파, (방울)토마토, 애호박, 초당옥수수 등의 작물을 번갈아 심으며 지력의 소모를 막고 염류 집적을 방지한다. 여기에 더해 3년에 한 번꼴로 호밀을 녹비작물로 심어 통기성과 유기물 함량을 극대화한다.
토양의 기본 영양은 퇴비를 밑거름으로 삼아 채운다. 특히 주위에서 구하기 어려운 ‘무항생제 돈분퇴비’를 확보할 수 있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최대한 수거해 활용한다. 150평 기준의 하우스 한 동당 1.5톤에 달하는 퇴비를 쏟아부어 땅의 기초 체력을 다진다. 부족한 양분은 유박으로 세밀하게 보충하며, 작물이 자라는 동안에는 흙살림 액비세트를 활용하여 물을 댈 때마다 적정량의 액비를 꾸준히 관주해 준다. 흙의 미생물 생태계를 깨우는 정성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것이다.
‘때’를 아는 부지런함이 승패를 가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해가 뜨기 전, 농부가 먼저 일어나 땅을 맞이해야 합니다.”
친환경 농사꾼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풀(잡초) 관리’에 대해 묻자,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권 농부는 철저한 계획하에 풀을 다스린다. 멀칭이 가능한 이랑은 완벽하게 멀칭을 하고, 하우스 주변과 밭둑 등 노출된 환경은 예초기를 들고 부지런히 풀을 벤다.
작물별 맞춤형 대응도 돋보인다. 대파의 경우, 모종이 아직 여리고 작을 때는 주위의 작은 풀들을 손으로 긁어 모은 흙으로 덮어버린다. 대파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 힘을 받기 시작하면 관리기를 동원해 흙을 돋우며 풀을 매몰시킨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흙을 뚫고 올라오는 잡초들은 예외 없이 일일이 허리를 숙여 손으로 뽑아낸다.
“사람은 절대 풀을 이길 수 없다. 미련하게 다 자란 뒤에 싸우려 들면 지는 거다. 풀이 힘을 쓰기 전에 미리미리 베고 덮어야 한다.”
농사는 타이밍이다. 약을 주어야 할 시기, 풀을 베어야 할 시기를 단 하루라도 놓치면 겉잡을 수 없게 된다. 해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뜬다. 그렇기에 해가 뜨기 전에 마쳐야 할 일은 새벽 별을 보며 끝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는 철저함, 그것이 권 농부가 말하는 부지런함의 본질이다.
지구를 살리는 농사
친환경 농업의 가장 큰 벽은 언제나 ‘판로’였다. 정성껏 키워도 제값을 받지 못하면 농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 농부는 일찍이 뜻이 맞는 작목반원들과 수확물을 한데 모아 공동물류를 추진하는 등 스스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다. 한때 토마토를 수확하고도 마땅한 출처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절, 흙살림을 찾아와 판로를 다각도로 협의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굳건한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판로를 뚫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틈새 전략’이었다. 남들이 기후나 기술적 한계로 출하하기 힘들어하는 혹독한 시기를 역으로 공략해 작물을 수확함으로써 판로를 개척해 나갔다.
최근 첨단 스마트팜 시설이 도래하며 농산물 생산량이 급증하는 현실을 보며, 그는 오랜 세월 흙을 밟으며 다져온 자신만의 생각을 나지막이 털어놓았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키우는 농사도 있겠지만, 저는 흙을 살려 키우는 이 정직한 농사만이 결국 지구를 살리고 인간에게 가장 건강한 먹거리를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말 그대로 땅도 살고 사람도 사는 것, 이래야 진짜 ‘친환경’이 아닐까요?”
젊은 세대의 윤리적 소비, 친환경의 벽을 허물기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권구영 농부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과 청년 세대들에게 간곡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최근 가치 소비와 윤리적 소비에 지갑을 여는 젊은 층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 땅과 환경을 지키는 친환경 농산물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조언이었다.
“‘친환경 농산물은 무조건 비싸다’는 오래된 선입견이 소비자와 농가 사이를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된 것 같아 늘 안타깝습니다. 실제 마트에서 비교해 보면 관행 농산물과 그다지 큰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선뜻 손이 안 가나 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이 땅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애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친환경 농부를 지켜낼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