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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농가-최창한(매실 전남 광양)

최창한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조그마한 벌레 한 마리를 보여준다. 지난해 씨살이좀벌 피해로 매실 농사의 절반을 망쳐야했다. 올해 다시 피해를 보게된다면 정말 낭패일 수밖에 없다. “농약을 두세 번 만 뿌리면 씨살이좀벌을 막을 수 있어요. 하지만 유기농을 한다는 사람이 양심을 저버릴 순 없잖아요.” 욕심껏 농사를 짓는 것은 유기농의 길이 아니라는 최창한씨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골의 낭만은 꿈속에서나
최창한씨가 매실농사를 짓고 있는 광양은 그의 고향이다. 어렸을 적 퇴비를 만들기 위해 잡목과 풀을 작두로 자르거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풀을 벨 때 나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군 생활 중 장래계획을 세울 때 ‘시골에서 멋진 삶을 살아보겠다’는 꿈을 지녔다.
하지만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 태풍에 다랭이논의 벼가 다 쓰러져 그걸 일으켜세우고 말리고 탈곡하는 작업에 녹초가 됐다. 시골살이가 녹록치 않기에 도시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핑계로 돌아왔지만, 사실은 풀 냄새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 유기농의 희망을 찾아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는 민박업도 함께 했다. 하지만 민박업이 서비스업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7년 정도 겸업을 하다 본격적으로 농업에만 힘을 쏟았다.
농사는 매실과 대봉(감) 위주였고 이른 봄에는 고로쇠를 채취했다. 매실은 아버지가 매실 농장으로 유명한 광양군 다압면의 홍쌍리씨에게서 얻어온 300주 가량이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품종들을 계속해서 심어나갔다. 이때 마을의 한 청년이 관행재배보다 판로가 안정적일 것이라며 유기농업을 권유했다. 2000년대 초엔 관행과 유기재배 매실의 가격이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판로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덤볐다.
■ 쉽게 얻는 것이 있을까
유기농을 처음 시작한 3,4년은 농사가 잘 되었다. 하지만 5년째부터 기후변화 탓인지 병충해 빈도가 잦아지면서 농사짓는게 어려워졌다. 농약을 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새로운 품종을 심었다 나무가 모조리 죽어나가기도 했다.
유기농이라는 것이 신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매해 새로운 숙제가 생기고 이것을 풀어가는 도전정신과 해법을 찾는 성취감이 유기농의 길을 계속가게 만들었다.
유기과수의 재배법 중의 하나인 초생재배의 경우도 그렇다. 호밀이나 헤어리베치가 좋다고 해서 심어봤지만 개인적으론 자연 그대로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됐다. 여러 가지 잡풀들이 자라나는 것이 건강한 흙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봄이면 나물을 캐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만의 유기농’이라는 것을 찾고 만들어 자부할 수 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답은 자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기농은 욕심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양심대로 짓는 것이다.”

■ 소비자와 함께하는 길
최창한씨는 현재 8,000평에 1,600여 주의 매실나무를 키우고 있다. 매년 기후조건에 맞추어 새로운 품종을 심기도 한다. 현재 백가하, 옥영, 천매, 고성, 남고가 주요 품종이다.
품종 선택은 소비자들의 입맛 선호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유기농업 초기엔
소비자들도 흠집이 나거나 벌레가 먹은 흔적이 있더라도 흔쾌히 받아줬지만 지금은 깨끗하고 과가 큰 것을 좋아한다. 또 황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황매를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에 맞추어 과가 크고 황매를 거둘 수 있는 품종을 선택해 매실나무를 심어나가고 있다. 또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농장을 보기 좋게 조성해 초청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한가지 꼭 당부할 것이 있다고 한다. “매실은 수분이 많아 수확 후 하루저녁만 지나도 쪼그라들거나 일부분이 함몰하는 현상이 있다. 나쁜 것을 팔려는 못된 생각을 갖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이해해준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