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30주년 기념 간담회 - 지속가능한 흙살림의 길
흙살림
조회수 566회
21-01-28 10:10
본문
일시 12월 3일 오전
장소 흙살림 청주센터 주위
참석자 이태근 흙살림 회장, 오태광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서성내 흙살림 사업개발팀장
1991년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업의 과학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흙살림이 어느덧 30주년을 맞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끝없이 도전하며 친환경농업의 발전을 위해 걸어온 길이었다. 흙살림은 2021년 올해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 생명의 시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흙살림의 지나온 3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지속가능한 흙살림의 길’이라는 주제로 작은 간담회를 가졌다.
편집자 주
오태광 전 원장(이하 오) : 흙살림이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0년 흙살림은 유기농의 불모지인 우리 농업에 친환경 유기농 기술을 접목,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온 결과 친환경농자재와 친환경농산물 유통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흙살림 사업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서성내 팀장(이하 서) : 친환경농산물 유통의 규모는 확장된 반면, 친환경 농자재의 범위는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유통이 현재와 같이 성장한데에는 지금까지 교육, 인증, 연구를 비롯한 농자재 사업 등의 기반을 잘 쌓아왔기 때문으로 본다. 그런데 유통의 증가 속도에 비해 예전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나 생각된다.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 사업체가 융합해서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식품 산업으로 가는 길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 : 이태근 회장을 처음 만났던 30년 전에는 흙살림 사업은 자손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 줄 수 있는 ‘농민운동’이라 생각했다. 밭에는 지렁이가 살아가고, 논에는 우렁이가 자라는 친환경 농업운동 말이다. 농업의 모체(母體)인 흙을 살리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은 미생물들을 활용하여 비료, 농약 없이 여러 가지 농작물을 생산하는 여러 가지 농사법을 성공하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채용하면서 기업적 요소가 가미되면서도 분명, 하는 일은 농업운동에 가까운데 어떻게 기업경영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했다. 흙살림이 처음 시작할 때의 정신은 운동이었나? 아니면 기업적 마인드였나?
이태근 회장(이하 이) : 괴산에 온지 37년이 됐다. 처음 목표는 사업이나 영리가 아니라 농민들과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헌신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는 탈농, 이농의 시기였다. 농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농민들을 만나고, 데모도 하고, 협동조합 운동도 했다. 협동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시대가 아니어서 농민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10년 후 돌아보니 사회가 잘 안 바뀌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기농업 농민들이 주로 미생물을 일본에서 수입해다 쓰는 걸 보았다. 그래서 미생물을 국산화 시켜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물론 이때도 사업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일본을 이기는 방법 차원에서 미생물을 국산화 시켜 농민에게 봉사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91년 ‘괴산미생물연구회’였다. 그때는 전국화도 생각 안했고, 괴산 사람들끼리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유산균을 만들어 재래식 화장실에 뿌려주니 냄새가 사라졌다, 퇴비 발효도 잘 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993년도에는 한살림이 제안을 해서 충북농촌개발회, 괴산소비자협동조합과 함께 미생물연구소를 만들었다. 지방 언론 등에서 서울대 나온 젊은이가 지역에 미생물연구소를 차렸다고 보도되었고, KBS TV ‘6시 내고향’에서는 당시 고추농사 짓던 모습이 소개됐다. 언론보도 이후 경북 성주군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광합성 세균과 유산균을 사기 위해서였다. 미생물을 팔 목적이 아니었기에 회원으로 가입시켜서 분양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전화가 불통될 정도였다. 1996년도에 회원이 대폭 증가했다. 이때 흙살림연구소장을 맡았다. 서울농대 후배들이 같이하고 싶다 합류하면서 흙살림이 시작됐다. 당시엔 사회에 신선함을 던졌다고 자평하고 있다.
오 : 그렇다면 농민운동을 하던 흙살림이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 : 그 당시엔 사단법인 인가가 어려웠다. 같은 목적의 활동이라면 한 단체만 인가가 나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흙살림이 그 제한을 뚫고 사단법인 인가를 획득했다. 하지만 사단법인으로는 미생물을 만들어서 팔 수가 없었다. 때마침 벤처 바람이 불었다. 운동을 하려면 사업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9년 말 주식회사를 독립시켜 2000년도에 공식 출범했다. 2002년도엔 최초로 민간인증기관을 만들었다. 점차 사업과 운동이 분리되던 시기였다.
오 : 흙살림이 사단법인에서 기업으로 바뀔 당시에는 벌레 먹은 농산물도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이라면 소비자에게 흔쾌히 수용되던 분위기였다. 지금의 소비자의 요구사항과는 소비형태가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유기 농산물 유통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
이 : 주식회사를 만들고 농민회원들이 생기면서 이 회원들이 유통을 원했다. 흙살림은 생산과 인증만 담당하면 된다고 생각해오다, 2005년 흙살림푸드를 만들었다. 분당에서 친환경농산물 매장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됐다. 침체기에 빠져 있던 중 대형마트 한 곳에서 친환경농산물 공급을 제안했다. 흙살림이 생각하는 유기농업의 가치를 인정해준 덕분이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 : 농자재 쪽을 보면 미생물 이용한 퇴비를 비롯해 다양한 농자재 제품이 개발되고 있고 또한, 비슷한 유기농 농자재 제품들이 개발되어서 시장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심각한 시장경쟁을 해결하는 대안은 없는가?
이 : 초기엔 대기업의 참여가 없었다.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대기업을 포함해 중소벤처기업 등이 우후죽순 달려들었다. 흙살림은 처음부터 해온 그 방식대로 미생물을 활용한 제품 시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생물로만으로는 살균·살충 효과가 떨어져 개선이 필요했고, 농작물에 빠른 효과를 보여 주기위해서 새로운 변화가 요구됐던 시기였다. 경쟁사들은 빠른 효과를 소비자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미생물을 이용하기 보다는 약효가 있는 천연추출물 시장으로 내달렸다. 이제, 적절한 농도의 천연 추출물과 적당한 미생물을 동시에 이용해서 빠른 효과를 보이면서도 지속가능한 유기농업 방식으로 발전이 필요한 시기이다.
서 : 흙살림은 현재 해외수출도 하고 있지만, 내수 중심이다. 하지만 흙살림의 기술력은 이제 어느 지역, 어느 국가로도 확대가 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 현재 농자재 시장은 왜곡되어져 있다. 유기농이란 흙과 물을 살리고 환경을 살려야 하는 길인데, 유기농업이 관행 농업화된 것이다. 농약 대신 추출물, 비료 대신 유박을 쓰는 것으로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흙살림은 유기농 원칙을 지키려다 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됐다. 시장은 철학과 별개로 흘러가고 있던 것이다. 펠릿이나 그래뉼 형태는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니 유기농 철학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농민은 펠릿이나 그래뉼을 편해서 사용한다. 미생물보다 추출물이 살균·살충 효과가 더 크니 미생물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유기농의 정신이 이곳저곳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오 : 농촌이 고령화 된 탓도 있을 것이다. 힘들이는 농사보다는 편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환경이 바뀌어 젊은 청년농부들이 어려운 농사에도 도전하고 있고 스마트팜과 같은 첨단기술도 도입되고 있다. 농자재 쪽에서도 유기농 정신을 가지고, 새롭게 농업 발전시키기 위해 들어온 청년농부들의 스마트 팜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진취적인 자세와 기성 농업인의 끈기있는 노력으로 얻어진 경험의 융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젊은 농민들이 참여한 새로운 농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 : 2014년도 친환경농업육성법의 기조가 바뀌면서 친환경인증 농가가 많이 줄어들었다. 유기농업 세대를 이끌어갈 후대 세대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젊은 유기농민들을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다. 향후 흙살림의 미래는 이런 청년농부들과의 호흡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흙살림의 정신과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 소위 융합시대다. 우리는 장점이 자재, 유통, 교육 등 모든 것을 묶는 토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부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판로다. 철학과 의식만으론 1~2년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또한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스마트팜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토경이 양액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딸기와 토마토는 양액 재배가 대세다. 유기농이 위기라는 것이 철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농부는 양액으로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 있다. 안타깝지만 시장이 변하고 있다.
오 : 스마트 팜에서 나오는 많은 폐기물 처리와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질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스마트 팜에 필요한 전기, 물, 폐기물 등등은 우리가 풀어야 할 환경의 숙제이고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수요/공급문제를 해결하는 묘수는 없을까? 대단위 스마트 팜 단지를 조성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문제들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농민운동이 필요하다. 농민운동은 대대손손 살아가는 우리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농업에 사용되는 미생물들을 획일 적으로 공급해주는데 이것도 잘못되면 농업환경에 가장 중요한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누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 전통 막걸리 맛은 각 지방마다, 각 가정마다 다른 수 천 가지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발효 미생물을 단일화시켜서 표준화하면서 어느 지방에서도 비슷한 맛의 막걸리가 되어버려서 귀중한 막걸리 맛의 다양성을 잃어 버렸다. 만약 다양한 전통의 막걸리 발효법이 살아있었다면 다양한 막걸리 명주가 보존되었을 것이고 현재의 발효산업도 엄청 발전했을 것이다. 스마트팜이 우리 농산물의 단일화되는 폐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공업용 생산 공장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 팜을 이용한 친환경농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환경단체들도 건전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 예전엔 집에서 소 한 마리씩 키웠는데, 지금은 공장형 축산이 됐다. 밭농사도 하우스 재배 등 대단위로 흘러가고 있다. 대세를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흙살림의 대응은 무엇일지 고민이다. 현재 양액이 화학비료인데 유기질 양액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해보고 있다.
오 : 전 국토가 스마트팜이 되면 날씨에 상관없이 생산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잉생산이 우려된다. 이런 과잉생산 농산물에 대한 ‘친환경 가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흙살림은 30년 전 창립할 때 전 국민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제 친환경 농산물 가공을 통해 소비자에게 마지막 제품까지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내세웠으면 좋겠다.
서 : 최근 TV에 나오고 있는 양조장 광고를 보면, 막걸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듯하다. 새로운 막걸리 시장처럼 융합해서 할 수 있는 창의적인 기획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흙살림의 다음 30주년을 위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포커스를 맞춰갔으면 좋겠다.
오 : 흙살림도 스마트팜,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에 호응하면서도 흙살림이 가진 유기농 생산 성공경험을 기반으로 생산, 가공, 유통을 포함한 6차 산업영역까지 친환경 유기농의 기술적 영역 넓혀가서 이 분야의 선두적 기업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
이 : 흙살림이 30년을 지나면서 새롭게 집중해야 할 것을 선택해야 될 시점에 온 것 같다. 초창기 ‘3천만 농민을 살린다’와 같은 큰 목표는 이제 바뀌어야 될 것 같다. 앞으로는 흙살림이 30년간 만들어온 것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젠 성년답게 닦아온 길을 잘 다듬어 가자.
오 : 지난 30년 이루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후원자의 역할을 앞으로 30여년 함께 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신기술을 융합하는 새로운 숙제를 가지고 젊은 피로 수혈된 우리 친환경 유기농업을 젊은이들과 함께 해결해갈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한다.
이 : 지난 30년간의 흙살림은 60~70명 직원이 함께 해왔다. 이걸 토대로 젊은 그룹들이 각자 소셜 벤처로 아이디어와 재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개인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20대에 혁명을 꿈꾸고, 30대에 농민운동을 하면서 흙살림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용기가 있었다.
오 : 이제, 6차 융합농업을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흙살림 정신을 만들고, 이를 젊은이들이 실현하는 주역이 됐으면 좋겠다.
이 : 흙살림이 초창기엔 모든 농민을 살리자며 뛰어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농부 한 명 한 명을 행복하게 하는데 역할을 하고 싶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를 지나, 앞으로의 30년은 구체적으로 농민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나아가자. 농부들의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주는 흙살림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