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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 이태근 회장 칼럼 <논은 생명의 어머니>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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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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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6월 13일자
[전문가의 눈-이태근]논은 생명의 어머니
(사)흙살림 회장

그러나 지금 우리의 농촌은 희망보다는 절망이, 푸르름보다는 누런색이 논둑을 뒤덮고 있다. 벼가 자라는 논에는 풀 나지 말라고 제초제를 뿌리고, 논둑에는 풀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 대고 있기 때문이다. 논을 자세히 보면 푸른빛 보다는 제초제에 타들어가 말라죽은 풀들로 뒤덮인 황무지와 같다. 생명의 장소가 죽음의 장소로 바뀐 듯하다.
원래 우리의 논은 단순히 쌀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붕어·미꾸라지·새뱅이 등과 같은 각종 민물고기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단백질도 함께 생산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논이 죽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인 물이 죽고 흙이 죽는다는 것을 뜻한다. 논을 통해 모든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이 벼농사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아시아 몬순기후에 속해 있어 중위도에도 불구하고 열대와 같은 고온의 여름이 있고, 연간 평균 1300㎜에 이르는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벼가 안정된 생산력을 가지는 작물이고 담수조건 아래에서는 매년 연작을 해도 연작장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번째는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경사진 지형을 이용한 논의 물관리가 용이하고, 담수를 통해 잡초가 만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억제했다. 마지막으로 담수조건은 유기물의 분해를 지연시켜 지력 소모를 막아주므로 벼농사가 발달할 수 있었고, 동시에 논은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었다.
우리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온 벼농사는 우리 국민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생명을 짓는 벼농사에 농민들이 제초제를 살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예전처럼 벼 수량을 늘리기 위하여 논둑을 만들고 빈자리가 생기면 보식(메워심기)을 하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논둑에 제초제를 살포하는 것은 습관처럼 행하는 일이 아닌가 의문을 가져볼 일이다. 더군다나 쌀이 남아도는 요즘 시대의 벼농사는 수량을 늘리는 것보다는 물을 살리고 흙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일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 자체가 식량공급 못지않게 중요하다.
경상도 사람들은 쌀을 ‘살’이라고 발음한다. 우리가 먹는 쌀은 곧 우리의 몸과 같다. 쌀을 내 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쌀을 버리면 쌀이 우리를 버리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제초제가 뿌려지지 않는 논을 보고 싶다. 푸르름이 살아있는 농촌을 보고 싶다. 논이 쌀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생명의 어머니로서, 생명을 잉태하는 장소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이태근((사)흙살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