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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환경]사라진 호수와 헐려가는 산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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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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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호수와 헐려가는 산
추억속의 ‘경양방죽’
전라도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답사 순로에 따라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내던 시골에 들러 이젠 허름하게 쇠락해 버린 집도 가보고, 방학 때면 찾았던 대숲에 둘러 쌓였던 외갓집도 가보았다. 지나간 기억과 추억을 따라 다닌 여행이었다. 그 중 가장 생각나는 한 군데를 말하라면 어디일까. 광주광역시 계림동에 있었던 ‘경양방죽’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이유는, 이제 그곳은 더 이상 추억할 거의 모든 자취와 흔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도시개발의 한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경양방죽’의 탄생과 위기
원래 ‘경양방죽’은 조선시대 세종 22년(1440) 때 공사기간 3년, 연인원 53만여 명이 동원되어 완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큰 공사였고 면적 4만6천여 평, 제방 길이 1㎞, 수심 10m에 달하는 커다란 인공호수였다. 필자가 어린 시절 때 뛰어 놀았던 당시에도 팽나무·왕버드나무 등 고목들이 숲을 이뤄 오랜 세월의 자취가 연면히 남아 있었다.
(지금의 삭막한 도시풍경을 생각해 볼 때 이 방죽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수년 전 복원한 서울의 청계천에 비기겠는가. 경양호수와 연결된 멋들어진 수변공원이 어울린 시가모습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양방죽’은 어떻게 해서 사라져 버렸을까.)
‘경양방죽’에 닥친 위기는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처음은 일제 강점시기 그리고, 1961년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의 개발과정 시기였다. 첫 위기는 일제의 경양지 매립 계획이 세워졌는데, 이에 ‘경양지 매립반대 투쟁위원회’가 조직되어 저항이 일어났다. 결국, 일본은 한발 뒤로 물러서 1만5천여 평만 남겨두고 매립하였다.(1936년) 이로써 ‘경양방죽’은 조선 세종대 당초 면적의 3분의 1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러다 ‘경양방죽 매립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 광주시는 일제 때 남겨진 호수에 대한 매립공사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겨우 남겨진 ‘경양방죽’은 독립된 국가에서 다시 매립될 운명에 처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경양방죽’은 1968년에 완전히 매립되어 분할 매각됐고 시청사와 주거지구가 들어섰다.
헐려버린 ‘태봉산’
그러나 ‘경양방죽’ 매립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일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인근의 멀쩡한 ‘산’까지 헐어버린 것이다. ‘경양방죽’ 매립토석 등으로 사용되어 사라져 버린 ‘산’은 높이 30m의 ‘태봉산’이다.
‘태봉산’은 당시 지금의 광주역 앞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헐리기 전 이 ‘산’에는 '누군가의 태'가 묻혀 있다고 어린 시절 우리에게도 입으로 전해져 왔다. 이 소문은 산을 허는 과정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뭉개고 깍는 '삽질' 도중에 태를 보관한 태실, 태병, 금박이 발굴된 것이다. 이것들은 조선조 인조2년(1624년)에 이괄의 난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왕자대군 아지씨를 낳자 그 태를 이곳에 묻었던 역사적 유물임이 확인된 것이다.
어리석다
결국 ‘태봉산’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경양방죽’도 사라졌다. 지금은 건물이 서고 변화돼 위치조차 찾기 어렵다. 개발실적주의와 이권이 빚어낸 대표적인 어리석음의 결과다.
‘산’을 헐고 ‘방죽’을 메워 귀중한 역사 문화유산을 한 칼에 없애버린 이 개발행정은 인간군상들에 의한 정책실패의 표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새만금, 4대강 등 각종 지역개발사업과 국책사업의 이름으로 개발이 미사여구로 포장돼 진행된다.
매년 줄어들고 전용되고 있는 논, 밭, 갯벌, 파헤쳐지는 강, 산림, 생물자원, 문화유산이 수난을 겪는다.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는 '산'을 헐어 '호수'를 메우는 일로 보인다. 그런 사업일수록 미사여구로 포장되어있기 마련이다. 어리석다.
<글:정혁기 도시흙살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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