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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와 엘니뇨에 따라 흙 황폐화로 작물생육 지장 초래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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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2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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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와 엘니뇨에 따라 흙 황폐화로 작물생육 지장 초래
농촌에서 농사의 절기(節氣)가 시작되는 봄은 만물이 소생되는 대지의 싱그러운 흙향기에서 맨 처음 접하게 되지만 이 철에는 봄가뭄(旱魃)이 짧기는 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농부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고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들녘에서 농작업이 벌어지고 건조한 날이 지속되면 갈아 놓은 맨 흙(裸地)에 갑자기 강풍(突風)이 들이 닥쳐 속절없이 흙바람을 뒤집어 쓴 마을풍광을 그런대로 자연의 순리로 받아 드리던 때가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엘 니뇨(El Nino)현상으로 세계도처에서 기온이 상승하고 겨울철 눈(雪)이 적게 내리는데다가 강우량마저 줄어드는 기상이변은 가뭄의 강도를 세게 하고 기간을 늘려 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고 결국 흙을 건조하게 만들어 바람에 의한 흙의 비산을 촉진하여 흙을 황폐화로 내 몰고 있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지금 겪고 있는 중국발(發)의 심각한 흙먼지(黃砂)의 고통은 환경과 보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흙폭풍(dust storm)은 강한 바람에 경작흙이 날려 대기에서 거대한 구름과 같은 형태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대평원 농업지대를 한발과 강풍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강타해 비옥한 표토를 날려 시카코의 하늘을 암흑의 천지로 뒤덮고 동부의 버팔로, 뉴욕, 보스턴, 워싱턴 등 도시와 대서양에 흙먼지를 쏟아 부었던 역사적인 사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목키산맥 동쪽자락에서 시작되는 대평원은 해발이 750~1,800m의 저구릉지대로 강우량이 500mm이내의 바람이 거센 반 건조기후에 속하고 단간(短稈)의 초본류가 주 식생인 거대한 반사막지대로 알려져 그 당시로는 농업의 부적지로 생각되었다. 이 지대는 가뭄이 들면 농사에 실패하지만 예외적으로 비가 내려 작물을 재배하게 되면 비옥한 흙이 풍작을 선사하게 되어 비는 경작으로 이어지고 이 지대에서의 농업이 가능하다는 신념이 확산되고 남북전쟁 이후 농산물가격의 상승과 법률(Homestead Act)적인 혜택으로 대평원으로 대 이주가 이루어지게 된다. 초기의 농업은 소규모 작물생산과 소를 방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886년에 시작된 몹시 추운 겨울과 1890년의 단기간의 한발은 과방목에 의한 경작지의 면적증가로 이어졌다. 반 건조지대이면서 이례적인 습윤(濕潤)기후의 도래로 농업이 규모를 늘리면서 이주농민이 20세기 초에 다시 이어졌다. 1차 세계대전은 농산물가격을 올렸고 기술혁신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져 규모가 커지면서 농장면적이 1900~1920년에 2배가 되었고 1925~1930년에 3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 지대의 주 작목의 하나인 목화는 겨울동안 바람이 최고로 세게 불 때 나지로 노출돼 있고 밀 그루터기는 태워버려 유기물이 집적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흙의 풍식(風蝕)을 조장하는 농업방식에 의존해온 것이다. 1930년에 심한 한발을 신호탄으로 대평원의 정주(定住)농업의 실행을 뒷받침 해온 비정상의 습윤기간이 사라지게 되면서 비극적인 흙폭풍시대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뒤집어쓰고 있는 흙먼지의 발원지인 구소련 카자흐스탄의 아랄지역과 중국의 타클라마칸사막, 내몽고, 황토고원과 몽고의 고비사막에 이르는 광활한 건조기후지대에서의 생태계파괴가 필연적인 건조농업과 과방목에서 발단된 흙폭풍은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과 연해주 등 동아시아 국가와 멀리는 미국의 태평양연안까지 영향을 주어 과거의 환경재앙의 악몽을 되살리게 하고 있다. 이같이 농지로 부적한 지대를 도를 넘어 개발하게 될 경우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흙관리 방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흙폭풍이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되새겨 볼 때이다.
농촌에서 농사의 절기(節氣)가 시작되는 봄은 만물이 소생되는 대지의 싱그러운 흙향기에서 맨 처음 접하게 되지만 이 철에는 봄가뭄(旱魃)이 짧기는 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농부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고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들녘에서 농작업이 벌어지고 건조한 날이 지속되면 갈아 놓은 맨 흙(裸地)에 갑자기 강풍(突風)이 들이 닥쳐 속절없이 흙바람을 뒤집어 쓴 마을풍광을 그런대로 자연의 순리로 받아 드리던 때가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엘 니뇨(El Nino)현상으로 세계도처에서 기온이 상승하고 겨울철 눈(雪)이 적게 내리는데다가 강우량마저 줄어드는 기상이변은 가뭄의 강도를 세게 하고 기간을 늘려 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고 결국 흙을 건조하게 만들어 바람에 의한 흙의 비산을 촉진하여 흙을 황폐화로 내 몰고 있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지금 겪고 있는 중국발(發)의 심각한 흙먼지(黃砂)의 고통은 환경과 보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흙폭풍(dust storm)은 강한 바람에 경작흙이 날려 대기에서 거대한 구름과 같은 형태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대평원 농업지대를 한발과 강풍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강타해 비옥한 표토를 날려 시카코의 하늘을 암흑의 천지로 뒤덮고 동부의 버팔로, 뉴욕, 보스턴, 워싱턴 등 도시와 대서양에 흙먼지를 쏟아 부었던 역사적인 사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목키산맥 동쪽자락에서 시작되는 대평원은 해발이 750~1,800m의 저구릉지대로 강우량이 500mm이내의 바람이 거센 반 건조기후에 속하고 단간(短稈)의 초본류가 주 식생인 거대한 반사막지대로 알려져 그 당시로는 농업의 부적지로 생각되었다. 이 지대는 가뭄이 들면 농사에 실패하지만 예외적으로 비가 내려 작물을 재배하게 되면 비옥한 흙이 풍작을 선사하게 되어 비는 경작으로 이어지고 이 지대에서의 농업이 가능하다는 신념이 확산되고 남북전쟁 이후 농산물가격의 상승과 법률(Homestead Act)적인 혜택으로 대평원으로 대 이주가 이루어지게 된다. 초기의 농업은 소규모 작물생산과 소를 방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886년에 시작된 몹시 추운 겨울과 1890년의 단기간의 한발은 과방목에 의한 경작지의 면적증가로 이어졌다. 반 건조지대이면서 이례적인 습윤(濕潤)기후의 도래로 농업이 규모를 늘리면서 이주농민이 20세기 초에 다시 이어졌다. 1차 세계대전은 농산물가격을 올렸고 기술혁신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져 규모가 커지면서 농장면적이 1900~1920년에 2배가 되었고 1925~1930년에 3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 지대의 주 작목의 하나인 목화는 겨울동안 바람이 최고로 세게 불 때 나지로 노출돼 있고 밀 그루터기는 태워버려 유기물이 집적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흙의 풍식(風蝕)을 조장하는 농업방식에 의존해온 것이다. 1930년에 심한 한발을 신호탄으로 대평원의 정주(定住)농업의 실행을 뒷받침 해온 비정상의 습윤기간이 사라지게 되면서 비극적인 흙폭풍시대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뒤집어쓰고 있는 흙먼지의 발원지인 구소련 카자흐스탄의 아랄지역과 중국의 타클라마칸사막, 내몽고, 황토고원과 몽고의 고비사막에 이르는 광활한 건조기후지대에서의 생태계파괴가 필연적인 건조농업과 과방목에서 발단된 흙폭풍은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과 연해주 등 동아시아 국가와 멀리는 미국의 태평양연안까지 영향을 주어 과거의 환경재앙의 악몽을 되살리게 하고 있다. 이같이 농지로 부적한 지대를 도를 넘어 개발하게 될 경우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흙관리 방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흙폭풍이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되새겨 볼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