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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콩 이야기 (4) : 베틀콩, 오가파콩, 푸르대콩
<맛있는 풋콩>
지금은 국어사전에서도 사려져가고 있는 말이지만, 맛을 표현하는 단어 중에 “맛이 배틀하다 / 베틀하다”란 표현이 있다. 호서, 호남지역 등에서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맛에 관련된 단어는 현재 고령의 노인들만 일부 기억하고 있는 단어가 되었다.
200여 년 전 서적인 임원경제지에 “배탈벼”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배탈’을 ‘냄새’로 뜻을 풀고 있지만 중세어에서의 “배탈”이란 말은 냄새뿐만 아니라 맛에 관련하여 두루 사용된 듯싶다.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을 자극하는, 밥 지을 때 나는 냄새와 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전에 배탈벼가 있었다면 배탈콩은 과연 없었을까. 배탈콩이 있었다면 그것은 또한 어떤 맛이었을까. 2018년 전국씨앗도서관 주관으로 수집한 당진지역 토종콩 중에서 “베틀콩”이 있다. 이 콩은 갈색무늬가 있는 중간크기로 콩나물 콩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수집당시 채록을 보면 "풋콩을 까놓으면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베틀한 맛이 난다. 부엌에서 밥을 하면 밖에서도 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베틀한 맛이라는 것이 쌀향기인지 콩향기인지 정확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집나간 며느리를 불러올 정도로 구미를 당겼던 정말로 맛있는 콩이었던 것만은 사실일 듯싶다. 좀 더 나아가본다면, 배고팠던 시절에 맛있는 풋콩을 일반적으로 <배탈콩/베틀콩>으로 불러왔을 수도 있다. 풋콩에는 자당에 의한 단맛과 글루탐산과 알라닌 등에 의한 고소한 맛이 마른 콩보다 더 있기 때문에, 입술이 새까맣게 숯검정이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풋콩을 구워먹었던 콩서리 맛이야 말로 배고푼 시절의 배틀한 맛 그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서 풋콩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에서의 인기만은 못하다. 일본에서 안주용으로 큰 인기가 있는 풋콩은 가지에 꼬투리가 매달린 채로 유통되기 때문에 한자로 지두(가지콩, 枝豆)라고 부른다.
臥叱多太 【왁대콩. 꼬투리는 흑청색, 종자는 흑적색, 풋콩(靑太)일 때 가장 무르다(맛있다).】[금양잡록, 강희맹(1424∼1483), 조선전기]
倭大豆 【왁대콩. 깍지는 푸르고 콩은 검불은색으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익지 않았을 때 삶아먹으면 매우 맛이 좋다. 민간에서는 靑太라고 하는데, 사투리로 大豆를 太라고 한다.】 [임원경제지, 서유구(1764∼1845), 조선후기]
오조이삭 청대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농가월령가 6월령, 정학유(1786년 ~ 1855년), 조선후기]
조선시대 세 문헌에 나오는 설명을 보면 풋콩을 한자 “청태, 靑太”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전기 농서 금양잡록의 청태 靑太는 문맥상 풋콩을 의미한다. 조선후기 임원경제지의 왁대콩 설명부분도 완전히 익기 전에 꼬투리채로 삶아먹는 콩을 “청태 靑太”라고 했다. 서유구와 동시대인인 정학유의 한글로 쓰인 농가월령가 6월령에 나오는 구절에 “청대콩”이 등장한다. 음력 6월은 푹푹 찌는 한여름인지라 이때 볼 수 있는 것은 마른콩이 아니라 빨리릭는 풋콩뿐이다. 이를 보면 200여 년 전 풋콩을 ‘청태’말고도 ‘청대콩’이라고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풋콩 활용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우리식문화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풋콩이 활용된 가공식품으로는 <청태두부, 청태장, 청태자반, 송편> 등에서 확인된다. 청태두부를 별미두부로 부르는 것을 보면 일 년 중에서도 풋콩이 나올 때만 만들어 먹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며, 아울러 청태장과 청태자반도 별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월이 흐른 현대에 와서, 청태라는 말과 글은 실생활에서 흔히 사용하지만 풋콩을 의미하기 보다는 말랐을 때 녹색인 큰 콩(푸르대콩)을 주로 의미한다.
풋콩이 갖는 미덕은 조생종이어야 한다. 조생종 콩은 빨리 익는 콩으로 올콩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임원경제지에는 음력 6월에 먹을 수 있다는 <유월콩>으로 등장한다. 음력 8월 추석에 송편의 소로 이용되는 콩도 조생종 ~ 중생종이어야 하며 또한 맛이 좋아야 한다. 이때쯤 익는 올콩 중에서 검붉은 풋콩이 이용될 수도 있다. 식물학적으로 신기한 토종콩 중에는 잎이 5장인 “오가피콩”이 있는데, 콩 껍질이 검고 빨리 익는 밤콩이다. 강화도 수집당시 설명을 보면 “맛이 좋아서 오가피향이 난다”고도 했다. 오가피콩의 단점은 콩깍지가 너무 잘 터져서 수확기를 놓치면 거두어들일게 별로 없는 것이다. 고농서에 나온 껍질이 검붉은 “왁대콩”이 바로 이 “오가피콩”처럼 검은색 올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푸르대콩을 찾아서>
푸르대콩은 “푸르다(綠)”라는 형용사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볼 수 있겠다. 푸르대콩(푸르데콩)은 일반적으로 콩의 색깔과 모양에 따라 분류할 때, 껍질이 푸른색의 큰 콩을 말한다. 푸르데콩을 한자로 옮기면 “청태, 靑太”가 될 수도 있고 “청대두, 靑大豆”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한문과 한글이 결합되어 “靑대콩”이 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파랑콩>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생활 속에서 이들 단어사용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서 풋콩을 푸르데콩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하다. 농민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때론 “청서리태”, “옛날찰콩”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靑大豆 【파랑콩. 색이 파래서 탐스럽다.】색깔로서 구분되는 콩이름이다. [임원경제지, 조선후기]
조선후기 임원경제지에서는 콩 껍질이 파란색을 한글로 <푸르대콩>이 아니라 <파랑콩>으로 기록하였다.
갖은 도태 심을적에 / 울콩불콩에 청대콩
만리타국에 강낭콩 / 도관포수는 검정콩
이팔청춘 푸르대콩 / 방정맞고 재산이 없는
주년이콩도 심으시고 [음성군 고사소리]
1990년대 채록된 위 음성군 고사소리에서 보면 비슷한 두 구절이 나오는데, 청대콩은 풋콩을 의미하고, 푸르대콩은 안팎이 모두 푸른 색깔의 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알이 굵고 껍질이 갈라져있는 푸르데콩도 있는데, 이 토종은 물을 빨리 흡수하여 밥밑콩 용도로도 적합했을 것이다. 인절미의 고소한 맛을 내는 고물용으로도 푸르대콩(청태)이 최고였다는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푸른색 콩은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다양한 푸르대콩(청태) : 크기, 모양, 색깔의 농담, 열피 정도 등 제각각 개성을 보인다.
푸르대콩 껍질의 녹색은 색소라기보다는 광합성 할 때의 엽록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정콩이나 갈색콩 등과 달리 녹색콩은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어느새 탈색되어 황태로 오인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