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토종콩3
<홀애비밤콩과 한아가리콩>
홀애비밤콩(홀아비콩)은 고농서 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민요에도 곧 잘 등장한다. 콩 이름이 재담의 소재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이팔청춘(독수공방) 푸르데콩, 이팔청춘 소년콩, 외톨백이는 홀에미콩” 등 종자 이름으로 기발한 대구를 만들기도 했다.
鰥夫豆 환부두 【깍지는 검푸른색이고 콩은 연누런 색이며, 콩 한알의 크기가 일반콩 두알과 맞먹는다. 맛이 달고 좋다. 민간에서는 하나두 (韓兒豆)이라고 부른다. ‘한아(韓兒)“라는 것은 한 개를 뜻하는 사투리이다. 이 콩의 파종법은 반드시 한 구덩이에 한알을 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부룩하게 뭉치고 섞여서 열매가 적으니, 이 때문에 하나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鰥夫(홀아비)라고 칭한 것은 이 콩이 홀로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임원경제지 본리지, 조선후기, 서유거』
누른색의 큰 콩을 '환부태[鰥夫太]'라고 하는데 따로 심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며, 맛이 매우 깊고 쌀에 섞어서 먹으면 삶은 밤처럼 달다. 『백운필, 조선후기, 이옥』
고문헌에서 보듯이 홀애비콩은 껍질색은 연한 노란색이지만 메주용 콩품종과 달리 아주 오래전부터 소문난 맛난 밤콩이었던 것이다. 콩껍질이 갈라져 있어서 볼품없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 맛을 못 잊는 극소수의 농가만이 자급을 위해 재배하고 있을 뿐 시장에서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됐다.
임원경제지에서는 홀애비콩 특성을 매우 상세히 적어 놓고 있다. 보통의 콩이 3알을 심어서 키우는데 반해서 이콩은 한포기만 심을 것을 당부한다. 홀아비처럼 외롭게 심어야 제대로 알곡을 거두어들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지혜로운 작명법인 것이다. 우리나라 재래종 콩들이 키가 무성해지면 스스로 쓰러져버리기 일쑤이며, 한번 쓰러진 콩은 거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흙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북을 주거나 키가 너무 크지 않도록 순을 잘라주는 등의 재배법을 개발해왔던 것이다. 하나콩(한아가리콩)에 대한 설명도 한구멍에 한 포기씩만 자라도록 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간혹 콩알이 상당히 커서 아가리가 꽉 찰 정도의 품종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한 알씩 갈아야(농사지어야) 하는 콩의 특성을 반영한 작명법이다.
<선비잡이콩와 매눈이콩>
黃大豆 황대두【누런콩. 깍지는 희고 콩은 누렇고, 보리를 베고 파종한다. 누렇고 양쪽 뺨에 검은 점이 있는 것을 민간에서 유집(儒執)이라 부른다】『임원경제지, 본리지편』
누런콩은 요즘말로 황태나 백태를 애기하는 콩이지만, 이어져 나오는 설명은 儒執 즉 “선비잡이콩”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즉, 배꼽을 중심으로 콩 좌우로 검은색 큰 점이 보이는 콩으로, 선비가 먹 묻은 손으로 콩을 집는 바람에 노란콩 양옆에 검은 색깔이 들었다는 의미로 설명되곤 한다.
콩껍질 색깔은 단색이 많지만 얼룩(혼색)이 있는 콩도 꽤 된다. 혼색콩을 '얼룩콩'이라 하는데 검은색 둥근무늬가 있는 것을 '우렁콩', 둥근 점무늬가 있는 것을 '매눈이콩' 이라 한다. 배꼽을 중심으로 말안장 모양으로 검은 반점이 있는 콩을 선비잡이콩(선비재비콩)이라 한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에 나오는 ‘매눈이콩’도 매의 눈을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여하튼, 민간에서 예전부터 "선비잡이"로 부르던 말을 한자로 기록하면서 선비儒 잡을執이 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말인 선비콩, 정승콩 등으로 불렸을 것이고, 콩의 모양만으로 보면 제비콩이나 개눈깔콩 새눈깔콩 등으로도 불렸을 것이다.
이 선비잡이콩은 황태나 백태의 주된 용도인 장을 담그거나 두부를 만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밥에 넣어먹는 콩 즉, 밤콩으로 주로 이용되어 왔다.

<아주까리밤콩과 등티기콩>
콩에 나타나는 아주까리 문양의 비밀은 색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네트멜론과도 같이, 콩껍질이 갈라지면서 생기는 무늬이다. 껍질이 갈라지면서 속살(떡잎, 자엽)이 보이는 것이 꼭 아주까리(피마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아주까리밤콩이나 피마자콩으로 불린 것이지 실제로는 서로 아무 상관없는 작물이다.
아주까리밤콩은 생김새가 독특하기는 하지만 겉보기가 좋은 콩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오랜 세월 도태되지 않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을까. 이 콩을 희귀성 때문에 농민들이 계속 심어온 것 같지는 않다. 콩껍질이 잘 터지므로 탈곡할 때 콩 자체가 갈라지는 것이 더 발생하는 단점도 있지만, 반대로 껍질이 많이 터져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콩을 물에 불릴 때 빨리 흡수되는 이점이 있다. 빨리 흡수되면 밥하는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두부를 만들거나 할 때 껍질이 쉽게 분리되므로 도움이 된다.

껍질이 갈라지기는 하지만 등 쪽에만 약간 갈라지는 콩을 민가에서는 “등티기콩”이라고 도 한다.
글 윤성희 흙살림토종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