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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소장의 종자 이야기<5>우리의 콩을 찾아서2
흙살림 조회수 1,145회 19-03-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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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과 오곡>
오곡(五穀)은 5종류로만 국한되지 않고 곡식의 총칭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오곡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구성되는 곡식의 종류도 달라져 왔다. 두만강 이북 지역은 예전에는 벼재배가 전파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지역 오곡에는 쌀이 빠졌을 것이며, 우리나라 중남부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쌀이 재배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곡에 쌀도 들어갔을 것이다.
벼재배가 꽤 늘어나는 조선후기에 이르면 오곡밥으로 쌀, 조, 수수, 팥, 콩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것도 콩을 제외하고는 지역, 시대, 집안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음력정월 대보름에 먹던 오곡밥이나 신라시대부터 먹었다는 찰밥에는 과연 어떤 콩이 들어갔을까. 음식을 다룬 『임원경제지, 정조지편』에 나오는 오곡밥 재료에는 검은콩을 사용하였다.


<역사 속의 검은콩>
검은색 콩은 중국의 『제민요술, 550년경, 가사협』에 등장하는 흑고려두(黑高麗豆), 조선초기 『금양잡록』에 등장하는 검은콩(黑太)을 볼 수 있다.


黑大豆【검은콩. 깍지는 적색이고 콩은 흑색이며 기름진 땅에서 잘 자란다. 중국 사람들이 검은고려콩이라고 부른다 】『임원경제지, 본리지편』


위 설명을 보면 결국 중국인들이 고구려시대부터 흑고려두(黑高麗豆)로 알고 있는 콩이 바로 껍질색이 검은 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흑태(黑太 검은콩) 중에서도 껍질에 흰색가루가 있고 콩이 넓죽하며 속이 녹색인 만생종 콩을 소위 서리태 또는 속청서리태라고 하여 그 인기를 이어오고 있지만, 속청이란 말이 고문헌이나 옛민요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근래에 들어와서 사용되기 시작한 말로 보인다. 서리태는 단맛이 많아 밥에 넣어 먹을 수 도 있으며 간혹 건강식으로 인식되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의 검은콩 사랑은 고구려 시대부터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도 집단무의식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민요인 「풍등가」와 「양주소놀이굿」에 “도감포수의 검정콩”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포졸들이 검은색 관복을 입은 것을 빗댄 것이다. 어째 거나, 검은색 콩은 예나 지금이나 메주, 콩나물, 두부용으로는 식품의 미관상 잘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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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검은콩도 크기, 모양, 광택이 각기 다르다.


현재에는 토종 서리태 이외에 농진청 작물과학원에서 개량한 신품종 서리태 종자도 보급되어 재배되고 있다. 그러지만, 연세 드신 분들 중에는 아직도 어릴 때 맛경험으로 인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진 더 넓죽한 형태의 토종 서리태를 애써 찾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충북지역에서는 이를 넓죽이라고 부르며 둥근 것보다 다고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얘기 나온 김에 좀 더 알아보면 속(子葉)이 녹색인 서리태 중에서도 다소 빨리 익는 것을 올서리태로 부르기도 하며, 껍질은 검지만 속이 둥글고 노란색콩을 흑태나 밤콩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재래시장에서 검은콩도 생육형태, 크기나 모양, 용도별로 여러 가지로 구분되어왔고 이로 인한 가격의 차등도 있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검은콩의 원형이 속(子葉)이 파란색(속청)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노란색(속황)에 가까운 것을 말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노란색도 꽤 일반적이었을 성 싶다. 게다가, 지역별로 농가별로도 갖갖이 검은색 토종콩이 재배돼 왔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알려지고 있지만, 검은색 콩껍질 속에 현대인에게 필요한 기능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도 유념해볼 일이다.


<약이 되는 쥐눈이콩 (서목태)>
검은콩 중에서 알이 작은 콩을 쥐눈이콩이라 부른다.


細大豆 세대두【잘외콩. 깍지는 검고 콩도 검다. 쥐눈처럼 작아서 민간에서는 쥐눈이콩(鼠目豆)이라 부른다. 습지에 심기 좋고, 약을 짓는데 들어간다 】『임원경제지, 본리지편』
 
작은 콩들이 대개 그렇듯이 단맛이 별로 없고, 잘 물러지지 않아서 밥밑콩으로는 이용되지 않았지만, 압력솥이 보급된 지금에 와서는 밥에 넣어 먹기도 한다. 속(子葉)이 노란 것과 녹색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요즘은 소위 속청서목태를 좀 더 선호한다. 서리 내리기 전에 익기 때문에 재배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서리태와 발음이 비슷하여 간혹 헷갈려하기도 한다.
한자로 서목태(鼠目太)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민요에는 “쥐년이콩, 주년이콩, 주녀리콩” 등으로 비슷비슷하게 불려져 왔고, 콩나물콩을 부르는 “준저리콩”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서목태도 콩알이 작으므로 콩나물콩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껍질이 검은색이라 나중에 분리된 껍질을 골라내는 수고가 있다. 한의서인 『방약합편, 1884, 황도연』에도 정음표기로 “검은작은콩, 쥐눈이콩”이 등장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검은콩은 약이 될 수 있다고 여겨왔던 듯싶다.


<맛있는 밤콩>
한 때 “콩밥을 먹다”라는 말은 “감옥에서 주는 밥을 먹는다.”를 의미하여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감옥에 든 사람들에게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고깃국을 줄 예산은 없고 식물성단백질로 메주 쓰는 콩이라도 넣어서 밥을 해먹였을 것이다. 이마져도 쌀값이 콩값보다 싼 시절에나 가능했던 얘기였고, 지금은 값싼 수입콩을 사용하지 않는 한 콩밥을 먹고 싶다고 애원해도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민족이 육식을 거의 안하고도 건강을 유지한데는 나름 콩의 기여한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콩은 다 좋은데도 불구하고 날 것으로는 사람이나 가축에게 소화가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콩을 굽거나 삶아서 먹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수많은 콩 중에서 삶았을 때 맛있는 콩을 택해 곡류위주의 식단과 결합하여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 냈으니 이른바 밤콩의 탄생이다.

밤콩이란 말은 밤색깔이 나는 한 가지 품종만을 일컫기 보다는 콩의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강낭콩에도 밤콩이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호랭이밤콩'이 강낭콩의 사용 예이다. 아마도, 밤콩은 익혔을 때 메주 맛이 아니라 밤 맛이 나기에 밥 지을 때 넣어먹는 귀한 밤처럼 맛있는 콩(밥밑콩)이어야 하며, 떡을 만들 때 사용되는 맛있는 콩이기도 하다.


수로천리 강낭콩 방정맞다 쥐년이콩
이팔청춘 푸르대콩 백설강산 허연콩
유리처사 밤콩이요 숙노대부 먹콩이요
풍진정장 철완콩 울통불통 도토다리


이글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최상일 피디가 수집한 민요에 등장하는 콩관련 대목이다. “유리처사 밤콩이요”에 나오는 밤콩은 실재한 콩일 수도 있지만, 문맥상 의미로는 정처 없이 떠도는 처사가 밤이면 더욱 처량해짐을 표현한 재담으로 승화한다.


혼자되어 홀아비콩이냐 이팔청춘 푸른대콩
무안당해 붉은대콩 도감포수 검정콩
얼룩덜룩 피마주콩 체수가 적어 쥐눈이콩

『국가주요무형문화제 70호, 양주소놀이굿, 종자타령의 일부분』


종자타령에서, 예로부터 등장하는 유명한 밤콩으로 홀아비콩, 푸르데콩, 붉으데콩(대추밤콩), 검정콩, 피마주콩(아주까리콩)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렇게도 다양한 밤콩이 있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죽어도 콩밥은 먹기 싫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진정한 밤콩을 먹어보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밤콩의 특징은 외형적으로는 크고, 식감이 부드럽고, 밥이 잘되며, 단백질 함량보다 탄수화물과 당의 함량이 다른 콩들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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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다양한 모양의 밤콩과 밥밑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