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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토종조 이야기 (3) : 생동찰, 청정미차조를 찾아서
현재, 국내시장에서 판매되는 조를 보면 메조는 거의 다 사라졌고, 차조를 보면 도정했을 때를 기준으로 “청차조”가 가장 많고, ‘노랑차조(황차조)’가 보이기는 하지만 가격도 청차조보다 다소 낮아서인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고농서에 수록된 조 품종들과 우리 조상들이 사랑했던 차조를 몇 가지 더 알아보자.
생동찰
우리말이 우리글로 기록된 것은 훈민정음 반포(1446) 이후 문헌부터 등장한다. 훈민정음 반포 30여년 후의 농서로 강희맹(1424~1484)의 “금양잡록”을 볼 수 있다. 금양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 광명 지역으로 그 현장의 얘기를 담았다는 의미가 큰 조선전기 농서이다. 흥미로운 것은 훈민정음(한글)으로 표기한 각종 품종이 등장하는 것이다.
금양잡록에 수록된 조(黍)는 15품종으로 당시 농민들이 어떻게 불렀는지 보여준다. 또한, 품종이름 끝에 차조를 구분하여 부른 것을 보면, 일찍이 우리조상들은 조에 대하여 작물학적으로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 용도도 구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닙희조, 욋고지조, 돋우리조, 도롱고리조, 사삼버므레조, 와여모기조, 므푸레조, 져무시리조(생동찰), 새고딜이조, 경자마치조, 져무시리차조(생동차조), 누억차조, 검은더기조, 가랏조
정음표기의 이름만으로 유추해본다면 세닙희조는 ‘잎이 3장인 조’, 욋고지조는 ‘오이꽃 (모양의) 조’, 돗우리조는 ‘돼지울음조’, 므푸레조는 ‘(줄기의 색이) 물푸른조’, 져무시리조(생동찰)는 ‘저물녘에 일어서는 조’, 새고딜이조는 ‘(수염이 길어서) 새 코를 찌르는 조’, 져무시리차조는 ‘저물녘에 일어서는 차조’, 생동차조는 ‘“생동”은 무언가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로 보인다’, 누억차조는 ‘누역=도롱이 (닮은) 차조’, 검은더기조는 ‘(껍질이) 검은색의 조’, 가랏조는 ‘가라지(강아지풀) 닮은 조’ 정도로 생각된다. 모두가 들으면 실감나는 이름들이다.
조선후기 서유구(1764 ∼ 1845)의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조는 42품종으로 대폭 늘어나 벼 다음으로 그 수가 많다. 서유구 가문은 3대에 걸쳐 탁월한 저서를 남겼고, 형수인 빙허각 이씨 또한 <규합총서>라는 저서를 남겼다.
금양잡록에서 등장하여 이름이 겹치는 품종도 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품종도 매우 많다. 금양잡록의 한자표기에서는 소리나 뜻을 빌려서 사용했지만, 임원경제지에서는 우리말을 정음으로도 표기 하지만, 병행된 한자표기 방식은 아예 한역을 해버린 것이 특징적이다.
별옥조, 바람그으리조, 먹조, 채알거리조, 싸조, 쇠등넘이조, 올조, 새조, 돌조, 피조, 쇠머리차조, 방망이차조, 괴양이발차조, 자재차조, 염주치조, 이웃모르기차조, 여호꼬리차조, 니봇구리차조, 청량(생동차조), 황량, 백량
먹조(검은 색깔의 조), 방망이차조(방망이처럼 끝이 뭉둑한 차조), 염주차조(염주처럼 이삭이 옹글거리고 긴 조), 여호꼬리조(여우꼬리처럼 이삭이 길게 잘 빠진 조), 쇠등넘이조(소 등넘어갈 정도로 키가 큰 조), 올조(빨리 읽는 조), 피조(피처럼 습한 땅에도 잘라자는 조), 이웃모르기조(키가 아주 크거나 아주 작아서 이웃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조), 니봇구리차조(맛이 좋아 쌀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조) 등은 독특한 품종 특성을 알려주는 것들도 많이 등장한다. 추가로 조를 분류한 방식으로 도정된 조의 색깔이 푸른지, 노란지, 하얀지에 따라 청량, 황량, 백량으로 나누었다. 특별이 ‘청량’을 우리말로 ‘생동차조’라고 기록하고 있어 금양잡록에서의 져무시리차조(생동찰)을 이어받고 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 1527)에도 청량을 훈민정음 표기로 ‘생동찰’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결국 수백 년 전부터 ‘생동찰’ 로 불리는 차조가 있었으며, 이는 좁쌀의 색이 푸르른 조 품종으로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청정미차조
조선말 황도연의 <方藥合編(방약합편, 1884)> 약성가(藥性歌)에 나오는 조는 황량(黃粱, 누런좁쌀), 청량(靑粱, 청정미), 속미(粟米, 좁쌀)이다. 도정된 상태의 색깔로 구분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청량(靑粱)’을 한글로는 ‘청정미’로 풀었다. 조선전기, 중기, 후기에는 ‘청량(靑粱)’을 훈민정음 표기로는 “생동찰”로 기록하고 있으나, 조선말 의서에서는 “청정미(靑精米)”로 풀었다.
靑粱 청정미
靑粱微寒止泄痢 청량은 성미하다. 설사와 이질을 멎게 하며
利?消渴熱胃痺 이수소갈하고, 열중위비를 다스린다.
일제시대에 서울에서 활동한 최경식(1876 ~ 1949)에 의해 완성된 경기잡가의 하나인 <풍등가>에도 “청정미” 관련된 대목이 나온다.
빛이 곱기는 청정미차조 / 빛이 검어 벼룩조요 / 이삭이 갈라져 새발조
1980년대 이후에 수집된 토종 청자조 중에서 청정미차조, 청장미차조, 청살미차조 명칭이 보이는 것은 일제시대에 매우 널리 퍼진 <방약합편>과 경기민요 <풍등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근거로 보면 청량(청차조)은 생동찰·청정미차조·청장미차조·청살미차조·청실미차조 등으로 불렸다는 것이고, 현재 시장에서 보이는 청차조 선호에는 오랜 세월 전부터 이어저온 우리조상들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농가들에서 수집한 “청살미차조”와 유사하게 불리는 품종들도 서로 이삭의 모양이 갈라진 것부터 쭉 뻗은 것까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한국토종작물자원도감. 2009. 안완식). 어째 거나, 흰 쌀밥에 노오란 찰기장이나 푸르스름한 청차조가 잡곡으로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밥맛이 눈으로 먼저 들어오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