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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이야기<1> 토종조 이야기(상): 그 많던 메조는 다 어디로 갔나.
아주 작은 곡식을 민간에서 “서슥, 서숙, 스슥” 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자로는 기장 서(黍), 조 속(粟) 이므로 “서속”을 비슷하게 부르는 것이다. 조는 우리의 고유어로 보인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의 기록을 보면 1,500년대부터 한글로 “조, 좁쌀”이 나오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다.

조(학명Setaria italica. 영명 italian millet 또는 foxtail millet)의 원산지를 아시아 중부로 보지만 이미 기원전 4,000 ~ 5,000년 전에 중국이나 유럽에 전파되었으니 그 재배역사가 까마득하게 오래되었다. 예전에 중요한 곡식을 말하는 오곡(五穀)을 말할 때에도 벼는 빠져도 조가 빠지지는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지만 중국, 만주, 한국 등이 주산지로 볼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알곡은 비슷하지만 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손가락조(finger millet)나 진주조(pearl millet)를 재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는 알곡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1,000립을 모아야 겨우 2~3그램에 불과하고, 누가 세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1리터로는 20만립 이상이 된다. 조 이삭 하나의 알곡을 세보면 5,000 ~10,000립이 되므로 한 알의 종자가 커서 만개가 되니 일립만배(一粒萬倍)란 말이 성립한다. 옛 그림에서 조가 알곡이 많이 달리므로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고, 익어서 고개를 숙이므로 “겸손”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와 가장 유사한 식물로는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풀을 들 수 있다. 서로 염색체수(2n=18)가 같고 교잡도 잘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의 주성분은 전분이며, 전분구조로 인해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 함량의 차이가 발생하여, 전통적으로 차조와 메조로 구분해왔다. 우리나라의 고농서를 봐도 메조와 차조를 서로 헷갈리지 않고 잘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메조인가 차조인가에 따라 활용도가 서로 달랐음을 보여준다. 즉 분자구조상 소화가 쉬운 메조가 주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소화가 다소 늦은 차조는 절기음식으로 이용됐을 것이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1월령)을 보면 "보름날 먹는 약밥, 신라 때 내려온 풍속이라.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히는 생밤이라. "는 내용이 있다. 아마 이 약밥에 차조가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쌀보다 조가 우선하여 재배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하리라 생각할 만하고, 쌀 재배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더더욱 차조나 찰기장을 넣어 약밥을 지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조는 밭작물의 대표주자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를 심은 뒤 이어서 겨울작물로 보리(또는 밀)를 심고 다시 질소를 고정하는 콩을 심어 2년3작의 전통적 윤작방식이 자연스럽게 정착했던 것이다. 그러하니 밭지대에서는 자연이 조가 주식이 된다. 또한 조는 생태형이 다양하여 봄에 심는 ‘봄조’와 하지 이후 뒷그루로 심는 ‘그루조’로 품종이 분화되어 있었으므로 작부체계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쉰날거리조(신날거리조)”는 심은지 50일 만에 수확하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이는 늦게 심고 빨리 수확할 수 있는 특성을 조상들은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좁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였으니 “쌀”을 말하면 지금의 벼만을 말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수천 년간이나 주식이었을 메조가 지금은 식용으로 재배도 거의 안하고 먹어볼 수도 없어졌다. 맛으로 치면 더 고급스런 쌀(벼)이 자급되면서 주곡으로의 지위에서 점차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차조는 잡곡용으로 재배되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올해 흙살림토종연구소에서는 메조의 맛을 찾아보기 위하여 토종 “노랑메조”를 시범적으로 재배하였다.
글 윤성희 토종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