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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칼럼-사람 살만한 나라가 되려면
흙살림
조회수 486회
14-03-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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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칼럼-사람 살만한 나라가 되려면
농업도 경쟁력이다?
수지가 맞는 사업은 누가 나서서 억지로 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확대되고 발전한다. 따라서 농사짓는 일이 높은 이윤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평균이윤이 나오거나, 혹은 그보다 낮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매일매일 자신의 노동력과 생활을 재생산할 수 있으면, 농사지어 그 어림 수준이 가능하다면 농가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농민이 농사지어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민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지어봤자 질수록 빚만 는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10여만 명 가까운 농민이 도시로 떠나간다. 이에 대해 혹자는 농민도 경영능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컨대 “농업도 경쟁력이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위정자와 관료, 지식인들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다시 농민을 격양시키고 있는 그 주장은 사회불안을 높이고 그나마 시행해오던 지원과 보조마저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 들린다.
수지가 맞는 사업은 누가 나서서 억지로 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확대되고 발전한다. 따라서 농사짓는 일이 높은 이윤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평균이윤이 나오거나, 혹은 그보다 낮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매일매일 자신의 노동력과 생활을 재생산할 수 있으면, 농사지어 그 어림 수준이 가능하다면 농가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농민이 농사지어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민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지어봤자 질수록 빚만 는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10여만 명 가까운 농민이 도시로 떠나간다. 이에 대해 혹자는 농민도 경영능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컨대 “농업도 경쟁력이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위정자와 관료, 지식인들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다시 농민을 격양시키고 있는 그 주장은 사회불안을 높이고 그나마 시행해오던 지원과 보조마저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 들린다.
농업이 무너지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
가격 경쟁력이 없지만 농업을 유지하고 농민이 살 수 있게 지원하고 있는 나라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농업이 망가지고 농민이 살 수 없게 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기 때문이고, 안심할 수 없는 불안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불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기반한 주무기관이 펴는 정책이 노리고 있는 효과는 사실 농업을 살리는 데에 가있지 않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은 마지못해, 농민의 분노와 저항을 달래기 위한 것처럼 비친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농민인구와 농업은 자연히 축소되고 개방경제체제는 대세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내 편인 것이다. 그래서 아예 "수익 안나는 농사 이제 그만 지어라"고 핀잔하는 말은, 듣기에 당장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경쟁력 운운하며 겁박해대는 것보다 더 나은 말일지 모른다.
가격 경쟁력이 없지만 농업을 유지하고 농민이 살 수 있게 지원하고 있는 나라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농업이 망가지고 농민이 살 수 없게 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기 때문이고, 안심할 수 없는 불안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불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기반한 주무기관이 펴는 정책이 노리고 있는 효과는 사실 농업을 살리는 데에 가있지 않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은 마지못해, 농민의 분노와 저항을 달래기 위한 것처럼 비친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농민인구와 농업은 자연히 축소되고 개방경제체제는 대세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내 편인 것이다. 그래서 아예 "수익 안나는 농사 이제 그만 지어라"고 핀잔하는 말은, 듣기에 당장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경쟁력 운운하며 겁박해대는 것보다 더 나은 말일지 모른다.
농민의 자존심
그런데도 사람들이 농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의 역류가 일어나는 것은 왜 일까. 정상적인 생활도 안 되고 사회적으로도 대우받지도 못하는 현실인데. 여기에는 도시가 절대로 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순환주기에 따라 살아가며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존심이 아닐까.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고, 냉장고를 끼고 살 수 없고, 자동차를 베고 잘 수 없으며, 석유로 목욕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처럼, 사람이라는 동물이라면 곡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그 생명의 원료를 생산하는 자존심 말이다. 비록 농민이 못살고 피폐하여 무시당하고 있을지언정 너희가 아무리 잘 났어도, 내가 농사지어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살아갈 수 없는 식량창고를 지키고 있다는 알아주지 않는 자존심 말이다. 농민이 이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든 않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농민의 개인적, 가족적 삶, 사회적 평가와 집합적 인식이 어떻게 되어있든 농민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조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근본적 문제의 출발이다. 모든 주요하거나 파생되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농민의 자존심을 인식하고 그 자존심이 생활 속에서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농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의 역류가 일어나는 것은 왜 일까. 정상적인 생활도 안 되고 사회적으로도 대우받지도 못하는 현실인데. 여기에는 도시가 절대로 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순환주기에 따라 살아가며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존심이 아닐까.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 없고, 냉장고를 끼고 살 수 없고, 자동차를 베고 잘 수 없으며, 석유로 목욕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처럼, 사람이라는 동물이라면 곡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그 생명의 원료를 생산하는 자존심 말이다. 비록 농민이 못살고 피폐하여 무시당하고 있을지언정 너희가 아무리 잘 났어도, 내가 농사지어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살아갈 수 없는 식량창고를 지키고 있다는 알아주지 않는 자존심 말이다. 농민이 이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든 않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농민의 개인적, 가족적 삶, 사회적 평가와 집합적 인식이 어떻게 되어있든 농민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조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근본적 문제의 출발이다. 모든 주요하거나 파생되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농민의 자존심을 인식하고 그 자존심이 생활 속에서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있다.
대우받아야 할 농업
농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농업이 지닌 가치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농업의 가치는 바로 식량과 자원의 창고라는 사실이 그 토대가 되어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식량과 자원을 생산하는 현장은 동시에 어떤 다른 수단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보다 완벽하게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 준다. 비교역적 가치, 공익적 기능으로 평가되는 흙과 물 관리, 생물종 다양성 유지, 자연경관 및 생태계 보존 등과 민족적 농촌문화, 함께 사는 마을 공동체 유지 등. 한 해에 농업이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화폐가치로 추산되는 생산액보다 이러한 부가적 가치생산액은 그 몇 배에 이른다고 추산되는 것이 국제적 관례로 통한다.
따라서 농사는 이같은 가시적, 비가시적 부가가치를 유지하고 만들어내는 농업의 유용성에 대한 공유를 전제하고 있다. 결국, 농업과 사회발전의 수준은 이러한 가치와 이용, 혜택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집단적으로 그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합의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지역사회로서의 농촌마을이 유지되고, 농민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사람 살만한 사회로의 발전에 필수적인 디딤돌이며, 마찬가지로 더 좋은 사회로의 진입 여부는 그 사회가 농업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느냐는 수준에 달려있다. 우리사회는 어느 수준에 있는가.
농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농업이 지닌 가치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농업의 가치는 바로 식량과 자원의 창고라는 사실이 그 토대가 되어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식량과 자원을 생산하는 현장은 동시에 어떤 다른 수단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보다 완벽하게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 준다. 비교역적 가치, 공익적 기능으로 평가되는 흙과 물 관리, 생물종 다양성 유지, 자연경관 및 생태계 보존 등과 민족적 농촌문화, 함께 사는 마을 공동체 유지 등. 한 해에 농업이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화폐가치로 추산되는 생산액보다 이러한 부가적 가치생산액은 그 몇 배에 이른다고 추산되는 것이 국제적 관례로 통한다.
따라서 농사는 이같은 가시적, 비가시적 부가가치를 유지하고 만들어내는 농업의 유용성에 대한 공유를 전제하고 있다. 결국, 농업과 사회발전의 수준은 이러한 가치와 이용, 혜택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집단적으로 그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합의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지역사회로서의 농촌마을이 유지되고, 농민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느냐의 여부는 사람 살만한 사회로의 발전에 필수적인 디딤돌이며, 마찬가지로 더 좋은 사회로의 진입 여부는 그 사회가 농업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느냐는 수준에 달려있다. 우리사회는 어느 수준에 있는가.
<글: 정혁기(흙살림 생협(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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