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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시대 친환경 유기농업이 나아갈 길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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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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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시대 친환경 유기농업이 나아갈 길
글 이태근(흙살림 회장, 환경농업단체연합회장)
FTA가 만든 농업환경의 변화

한미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이 이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농업은 우리사회가 전진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어서 함께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승차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경제성장을 위해 선택된 자는 누구이며, 버림받은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선택을 통해 이익을 보는 그룹은 누구일까?
FTA가 대세이든 그렇지 않든 농업환경이 변한 것은 분명하다. 사회가 급속히 변하고 있고 농업도 변하는 메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야 한다. ‘FTA는 대세’라고 패배주의에 빠져도 안 되겠지만, FTA와 무관한 농업정책을 고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발전해 나갈 것인지 좀더 침착하게 전략을 세워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농민 단체 중에도 농업문제를 해결하는데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 우리 농업은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이다. 친환경농업의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이 이것인데, 이에 반대하는 진영도 있다. 지금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할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민에게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 법 개선을 해야 한다. 예컨대, 농산물의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서는 품질 좋은 우리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농업이 살길을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민간에서 스스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쌀뿐만 아니라 품질을 바탕으로 한 우리농산물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정부가 환경을 지키는 부분에 적극 지원해야 하고, 불합리한 제도나 법을 개선해야 한다. 또, 선심성 지원 정책에서 탈피하고 직불금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시설비 등으로 간접 지원하게 되면 실제 이용도는 낮으면서도 주변 업종으로 돈이 새어나기 일쑤인데, 그것 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일에 지원함으로써 농가의 소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낫다.
둘째, 농민들이 생산하고 가공까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U가 농업에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돼지를 열 댓 마리만 키워도 유지가 되기 때문인데, 그것은 농가가 햄으로 가내 가공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민은 돼지고기만 생산하고 가공은 기업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집집마다 장 담그고 술 담그는 기술이 전통적으로 전수되어 왔는데, 농가의 그런 가공기술을 잘 살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농촌이 경쟁력을 얻는 것은 농촌다움을 유지, 회복하는 것이다. 농촌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농산물을 생산(1차산업)하고, 가공(2차산업)하여, 도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먹을거리를 직접 판매?유통하는 서비스(3차산업)를 제공하는 종합적 산업기지가 될 수 있다.
셋째, 소비자와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일본은 벼를 손으로 베어서 햇빛에 말리는 농가가 아직 많다. 그런 농가들은 직접 소비자와 연결되어 있다. 소비자로 하여금 어느 집 쌀이 맛이 있으니까 슈퍼마켓에서 사먹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평생 고객이 된다. 우리나라는 생산된 대부분의 벼가 RPC에서 뒤섞이게 되고 결국 미질은 하향평준화 된다. 우리 소비자들은 뭐가 좋은지 잘 모르고 자국의 농산물이 가진 품질과 의미를 이해하지 않은 듯하다. 결국 농민과 정부당국은 우리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를 확대?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 실행해야 한다.
넷째, 도시민들이 농업을 보다 더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농촌을 찾아와 머물고 체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집 가까운 텃밭이나 공원, 옥상, 정원, 골목길 등 자투리땅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옥상정원을 조경사업으로 꾸미려면 몇 백만 원이 들어가지만, 흙상자를 통해 유기농 농장으로 만들면 몇 십만 원으로도 할 수 있다. 특히, 유치원, 학교 등 교육기관과 독거노인과 환자들이 자기가 직접 작물을 가꾸도록 한다면 농업 천시 풍조를 반전시키는데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도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런 공간들이 이웃들과 만남과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한다. 농업이 가까이 있다보니 먹을거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낄 수 있다. 도시에서 나무 키우고 꽃만 키우는 게 아니라, 농사지어 돈 벌라는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 농업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농민 스스로의 변화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한미FTA를 겪으면서 농업계는 자칫 비관론에 빠지기 쉽다. 농민 스스로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면서, 모든 농민이 농업의 비교역적 가치를 지켜 나가는 파수꾼임을 자각하고 자긍심을 갖고 농업에 임한다면 FTA에 대한 대세론이나 비관론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유기농산물의 생산력 증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기농산물은 관행농산물에 비해 생산력이 낮기 때문에 주류 농업이 아니라 틈새 농업으로 이야기 되어 왔다. 유기농업의 생산력 증대는 결국 흙과 종자의 만남이다. 유기농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흙을 살려야 하고, 그 흙에 맞고, 기후에 맞는 내병성, 내충성이 강한 토종종자를 개발해야 한다. 유기농업의 생산력 증대를 위하여 연구기관, 대학들이 연구개발에 참여하여야 한다. 제대로 된 유기농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농민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곱째, 우리나라 농업 목표를 환경을 지키는 유기농업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친환경농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일해 왔다. 2010년까지 친환경농업 10%라는 정부 목표가 있지만, 유기농업은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 현재 0.5%에 머물러 있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의 목표를 상향 설정하고, 전 국민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유기농업이 지향하고, 한반도 농업이 지향하는 목표를 세워서 우리 국민들을 설득하고, 친환경 유기농업을 통해 환경을 지키는 방향으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농업기술과 영농자재 부문
유기농업에서의 기술과 자재는 관행농업에서의 관습에서 탈피하여 경종적, 예방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외부에서 가져온 자재들의 투입을 최소화하고 생태학적 순환과 자연적 천적활동 등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지나치게 농장이나 지역의 외부에서 유래한 자재들에 의존하고 있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제품화된 생물농약이나 유기질비료 등에 의존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농업기술은 일차적으로 자재투입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연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게다가 농민이 의존하고 있는 유기농업용 자재는 친환경농업육성법에서 정한 사용기준 외에 비료관리법 또는 농약관리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비료관리법 또는 농약관리법에서는 자재에 대하여 질소 등의 보증성분량이나 방제가, 안전성 등을 규격화하여 자재의 효과를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는 반면, 친환경농업육성법에서는 자재의 효과보다는 유기농업의 원리에 따라 자재의 원료와 제조공정이 친환경적인지 여부를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에 의해 시행된 친환경유기농자재 공시제도는 자재의 효과, 독성 등 일반 화학자재와 같은 평가기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유기자재의 평가 취지와는 엇갈리고 있다. 유기자재는 원재료의 출처를 명확히 증빙하고 제조 과정의 유기적 완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렵게 도입된 제도가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유기자재공시제도 등 유기농 관련 검증시스템은 미국의 OMRI의 사례와 같이 민간 전문단체에게 위임하는 편이 낫다.
결론적으로 유기농자재는 화학비료와 합성농약과는 다른 독립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재배농가의 선택에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하며, 자재의 제조업자가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금지된 화학물질을 혼입하여 일으킬 수 있는 부적합자재 생산·유통을 사전에 막음으로써 소비자에게도 신뢰를 갖도록 추진하여야 한다.
소비 부문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인증농가수, 면적, 생산량은 해마다 78~82%씩 성장하는 폭발적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 친환경농산물 중 저농약 농산물이 63.1%, 무농약농산물이 28.4%로서 유기농산물은 8.5%에 머물러 있어,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은 여전히 저농약 중심으로 친환경농업에 접근하려는 모습이다. 유기농산물에 대한 시장 매력도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가의 관행농산물이나 수입농산물에 다음 세대의 먹을거리를 맡기지 말고, 그 지역의 유기농산물을 해당지역의 초·중등 교육기관과 대학이 소비함으로써 농업의 다원적 사회가치와 식량주권보호, 자원순환의 원리를 실천하는 기틀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대학은 건전한 소비 패턴을 만들어 나가는 대학생협이 있고 직영 식당을 운영할 수 있으므로 먹을거리를 단순히 자본주의 시장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닌 교육의 연장으로 실천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증 부문
우리나라에서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2002년도부터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현재 34개의 인증기관이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농관원(정부)이 전체 친환경농산물 인증의 70% 이상을 하고 있고, 민간인증 실적도 전라남도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모습이다. 정부와 민간이 경쟁하면서도 동등한 인증기관이라 할 수 있는 농관원이 인증기관의 감사를 시행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민간의 설자리를 빼앗고 정부 몸집만을 불리고 있는 정부주도형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는 조속히 민간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인증기관 육성과 인증제도 선진화를 위해 지도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정부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간이 해야 할 기능을 거대화된 정부기관이 국민이 낸 막대한 세금을 써 가면서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친환경농산물인증은 그 적합 여부를 결정하는데 농약 잔류 검사 등의 성적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잔류농약 검사는 생산자가 농약을 사용했을 것으로 심증이 생겼을 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이지, 모든 선량한 농민들에게 강요될 인증절차가 아니다. 모든 농가에게 검사를 강요하는 것은 분석성적서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리실적이 높은 것이라는 착각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본다. 많은 비용이 분석에 쓰이고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과 민간 인증기관에게 돌아간다.
분석을 의무화하기보다는 현행 친환경농업육성법 시행규칙에서와 같이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인증심사원이 필요에 따라 농가의 동의를 얻어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규정을 과대 해석하여 모든 농민들을 ‘의심스런’ 생산자로 간주하지 않도록 인증심사의 방향과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농업 정책은 국민과 함께
농업을 농민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으로 만들어야 전망이 있다. 농촌을 농산물 공장처럼 만들자고 하면 희망이 없다. 공장식 농업이란 논에서 쌀이라는 상품만 생산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논에서 쌀도 생산하고, 송어, 미꾸라지, 우렁이도 잡아먹고, 환경도 지키고, 물도 살리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농산업 중심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경제 외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만들어 가야한다. 즉, 농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농촌에서 농업이 없어지면 물은 오염될 수밖에 없고, 결국 서울로 흘러갈 것이므로 농업이 가져오는 이러한 가치를 살리는 것은 결국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 농업으로 인하여 환경이 파괴된다면 한 국민들에게 농업을 살리자는 주장에 명분이 생기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농업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핵심은, 농민들의 변화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의 변화가 우선이다. 지금까지 보조금을 농촌에 쏟아 부었다고 국가가 선전하니까, 일반 국민들도 농민들이 공돈 받아먹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매도하고 있다.
농민들을 비롯하여 농업?농촌과 관계된 단체들이 정확한 농업환경분석과 전망을 내어오지 않으면 정말로 살아남기 어렵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부에 요구하는 사항들이 예산지원이나 특정 지역 또는 품목에 대한 협소하고 피상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농업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농민들이 협력을 하고, 정보도 많이 파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보와 기술을 받아들여야 실패하지 않는다.
친환경농업에도 시장의 논리와 수익성 중심의 사고가 판을 치면서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고, 그러한 상황이 반농업적, 반환경적 기업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농업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상업적 흐름이 바르지 않은 정보와 기술을 농민들에게 공급함으로써 농민들이 실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나와 관련된 농업만을 위한 운동이 되도록 하지 말고 우리나라 전체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공동의 방향을 모색해야 하고, 그런 모색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 들어오도록 하는 일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