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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17> 과학의 두 가지 길1
흙살림 조회수 265회 19-08-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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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덤은 왜 중국에서는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는가를 물었다. 니덤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질문은 왜 중국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는가와 같은 질문이 된다. 여기에 대한 답은 대체로, 유교에 바탕을 둔 관료제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실제 관료제가 상업이나 경제의 발전을 막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공생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관료제가 부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18세기 중반까지는 중국이 유럽에 비해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에서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다는 점, 유럽에서 과학혁명은 산업혁명 이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전에는 그렇게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점 등이 제기되었다.

이외에 인과성, 자연법칙, 창조자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 증명, 형식논리, 기하학, 대수학, 실험 등의 방법론적 요소들이 없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김영식,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

그러나 니덤의 질문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과학, 정확히 말하자면 동아시아에서 서양의 근대과학이나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려면 역사 발전에는 일정한 법칙성이 있어서 모든 역사는 그런 정해진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역사는 자본주의, 그것도 근대 서양의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왜 그러지 못했는가(Why not)’라는 질문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도 않고 나아가 바람직하지도 않을 때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문제를 바꾸어 보기도 했다. “왜 서양은 동아시아의 유교문화에서 행해지는 문명화된 행동 양식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가? 왜 중국이나 일본, 한국처럼 성숙하고 지각 있게 자신들이 정착한 지역에서 질서를 이루며 머물러 있지 못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문제나 일으키고 다녔는가?”(윌리엄 드 배리. 김영식에서 재인용). 더 심하게 말하자면, 한 사람은 살인을 했는데 왜 옆에 있는 사람은 살인을 하지 못했는가를 물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의 경제는 노예제나 봉건제와 같은 큰 틀에서는 같은 과정을 밟아왔지만 이행의 경로는 서로 달랐다. 그에 따라 과학의 발전도 달라졌다.

혼돈의 시대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 구분이 필요 없거나 그런 구분으로 인해 오히려 그 사회와 종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신화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잉여가 생기고 이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의 축적을 위한 폭력이 생기자 계급이 생기고 자연과 인간은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혼란, 정확히 말하자면 지배자에 의한 폭력으로 인한 피지배자의 고통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잉여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지배자 사이의 투쟁으로 인한 혼란이 일반화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그런 고통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폭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한 노력 역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은 일차적으로 내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현실, 곧 이 세계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도대체 이 고통을 주는 이 세계는 무엇인가에 의문이 생겼을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 많은 잉여를 얻기 위해서 이 세계를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생겼을 것이다. 이처럼 우주 전체를 사색하는 자연철학의 탄생은 정치적, 심리적 고통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이라는 이중의 역설적인 상황에서 나온다. 참된 것, 영원한 것, 필연적인 것, 보편적인 것이 사라진 시대, 우리가 믿고 의지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우리의 삶을 근거지어 주는 그 어떤 것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철학은 이러한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그리스의 식민지, 곧 동쪽의 이오니아 지방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발생했다(이정우, 『세계철학사』1).

이러한 최초의 철학적 고민은 세계의 근원, 세계의 궁극적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아르케arch? 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에게, 우리의 감각에 비치는 이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이에 비해 노자와 공자에서는 현실을 가상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불교의 유입 이후에 비로소 나타난다). 따라서 감각적 차원을 넘어 참으로 실재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원리’였다(노자와 공자에게도 이런 ‘원리’에 해당하는 도道가 있었지만 이는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물 자체에 내재된 것이었다). 이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파악된 세계이며 원리이다.

고대 그리스는 해양을 끼고 형성된 도시국가였다. 도시사회는 상인과 장인, 그리고 군인이 결합된 조직이다. 상품의 유통과 소비, 주변 지역에 대한 식민지화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다. 도시사회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되도록 많은 생산단위들을 통합함으로써 생산단위에서 생길 수 있는 교란이 미칠 부정적 영향을 극소화하려 한다. 따라서 도시인의 관심은 자연이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 되는 생산단위의 횡적인 연관, 기하학적 연관이다. 이제 자연은 공간에 따라 심한 편차를 보이는 주관과 억견의 산물, 곧 인위적인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 자연과 인위의 근본적인 전도가 일어난다.

도시사회는 무엇보다도 상품의 교환에 기초한다. 상품의 교환에는 상품의 자연적 특성에 기초한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만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사물은 물론 인간관계까지도 공간화하고 양화量化시키는 합리적 사고와 동질적이고 규격화한 생산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의 개발과 연마, 신속한 계산능력과 광범위한 인간관계의 유지가 슬기의 원천이 된다. 모든 현상적인 것은 조작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인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은 이러한 조작의 최후 단계에서 모든 조작에 저항하는 물질적인 단위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환원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나온다. 이러한 자연과 인위의 근본적인 역전이 초기 그리스 철학의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인데,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연속된 계열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며(노자의 유무상성有無相成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제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라는 불문율이 성립하는 것이다(윤구병,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에 관한 소고?). 도시사회의 탄생과 함께 인간은 자연에서 분리되었고 세상은 있는 자는 있는 자이고 없는 자는 없는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철학, 그리고 거기에 기초한 과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근대의 철학과 과학은 이와 달랐다.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