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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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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16 - 두 가지 길의 현실적 근거3
흙살림 조회수 151회 19-05-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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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라는 측면에서 공동체의 아시아적 형태와 그리스로마적(고전고대적) 형태 그리고 게르만적 형태의 차이를 원시공동체와 더불어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小野塚知二, 『經濟史』). 원시공동체에서는 동산動産을 제외한 모든 집과 토지는 공동체의 소유이며 잉여는 제례祭禮나 잔치, 포트래치(potlatch)로 소비된다. 포트래치는 잉여의 축적을 막기 위한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환대를 말한다. 이에 비해 아시아적 형태에서는 동산과 헤레디움heredium을 사유로 할 수 있었다. 헤레디움은 세습할 수 있는 재산을 가리키는 말로, 한 가족이 사는 집과 택지, 그리고 그 주변의 텃밭이나 화전 등으로 개간한 땅을 포함한다. 그 이외의 모든 경지와 목지(牧地. 가축을 기르는 땅), 공유지는 공동체의 소유다. 여기에서도 제례와 포트래치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늘어난 잉여를 착취하기 위한 공납과 각종 토건이나 전쟁을 위한 부역 등이 부과되었다.

그리스로마적 형태에서는 동산과 헤레디움에 더하여 경지의 일부가 사유로 되었다. 이러한 경지는 노예노동에 기초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도시국가Police가 성립하였다. 게르만적 형태는 이보다 더 나아가 모든 경지가 사유로 될 수 있었다. 여기 더하여 공유지에 대해서도 일정한 이용권을 갖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아시아적 형태에서 개인은 단순한 점유자일 뿐,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없이 공동체의 소유가 공동체를 지배하였고, 그리스로마적 형태에서는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 소유와 사유가 병존하였으며 게르만적 형태에서는 공동체의 소유가 개인적 소유를 보완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차이는 그 이름과는 달리 특정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토지와 소유관계를 갖기 시작하는 공동체의 성격과 자연조건의 차이 등에 따라, 대표적인 지역의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며 비슷한 조건 속에서는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는 형태이다. 또한 아시아에서 게르만에 이르기까지 점취에 의한 소유권이 점차 확대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는 논리적인 파악일 뿐이며 역사적으로는 이런 형태들이 공존하거나 뒤섞이거나 한 형태가 오래 지속되거나 하는 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리스로마적 형태와 게르만적 형태를 이해함에 있어서 간과하기 쉬운 점은 두 형태 모두 폭력에 의한 약탈과 식민지 지배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이는 아시아적 형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가 토지에 관계할 때 자연조건(온난하고 대규모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아 분할 경작이 가능하다는 조건과 국토가 수많은 산맥에 의해 작은 평원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조건)보다는 다른 공동체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곧 다른 공동체가 이미 토지를 점거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 공동체가 위협을 당하거나 하는 사회적 조건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들 형태에서는 전쟁이 필연적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이들 공동체를 유지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공동의 임무가 되었다. 가족으로 구성된 공동체는 이러한 임무에 따라 군사적으로 편성되고 공동체의 구성원은 도시에 집합하여 일정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다른 공동체의 토지를 약탈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힘에 의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약탈한 토지는 공동체의 직접적인 공동소유였지만 거기에 참여한 전사=시민은 전리품으로 자신의 지분을 분할 받았다. 그리스로마적 형태에서의 시민은 개인적으로는 토지소유자이면서 공동체의 성원으로서는 전사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적 소유와 사적 노동의 주요한 목적은 부의 창출이 아니라 공동체와 성원의 유지에 있었다. 이는 이들의 사적 소유의 존재 자체가 공동체에서 분할 받은 것이었고 이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