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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15 두 가지 길의 현실적 근거(2)
인류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로 이행하면서 대체로 기원전 첫 밀레니엄(기원전 1000년-기원전 1년) 사이에 ‘보편적 질서’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첫째로 돈, 두 번째는 국가와 제국, 세 번째는 종교였다. 이에 상응하여 상인과 정복자, 예언자가 탄생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이 이행은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났지만 이행의 길은 서로 달랐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행에는 고전고대적(그리스적) 형태와 게르만적 형태, 그리고 아시아적 형태가 있었다(이하의 내용은 최종식,『서양경제사』, 芝原拓自,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 大塚久雄, 『공동체의 기초이론』 등을 정리한 것이다).
혼돈으로부터 질서로의 이행은 인간의 정착으로부터 시작되며 정착과 동시에 인간에 의한 대지의 점유양식의 차이에 따라 이행의 길이 달라진다. 이는 인간이 정착할 때의 주객관적 조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이 중 중요한 것은 정착하는 종족의 조직 상태(원시 공동체)와 기후와 토지의 물리적 상태[풍수風水]일 것이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에 따라 대지의 점유양식은 물론 노동 대상과 노동과정이 달라지고 생산물이 달라지고 생산물의 교환 방식 역시 달라진다. 이에 따라 의식의 양식 역시 달라진다. 왜냐하면 의식은 아무리 그 자립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발생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지 못하면 별다른 의미가 없거나 그 사회에 해가 될 때는 대부분 억압되어 소멸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적 형태는 종족이라고 하는 공동체에 의한 대지의 공동 소유에 기초한 공동 노동(인공 관개와 같은 치수治水가 대표적인 것이다)을 기본적인 생산관계로 한다. 소유와 생산과 분배는 공동체 내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자기 완결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동체 내에 ‘가족’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은 소유와 생산, 분배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이를테면 개인이나 가족은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아시아적 형태는 황하 하류와 같은 아시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강 유역 등, 농업이 시작된 곳이라면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질서로 가는 보편적인 농업공동체다. 이 공동체의 최소 단위는 씨족이었는데, 씨족은 대가족으로 구성되고 다른 여러 씨족에 속하는 5-20개의 가족과 하나가 되어 공동 가옥에 거주하며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다(모건, 『고대사회』). 이런 씨족이 모여 종족을 이루게 되는데, 각 씨족은 설혹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상속되거나 양도되거나 할 수 없는 것이었고, 씨족에 의해 점유되어 경작되는 토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그 종족의 공동 경지가 되며, 공동 경지의 개간을 포함한 모든 토지는 각 가족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분배된다. ‘실질적 평등’(막스 베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아시아적 공동체는 가부장제에 의해 구성되는 가족 공동체가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고 부족의 형태로까지 확대된 가족, 상호 혼인에 의해 결합된 일련의 가족이라는 가부장제 대가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에 의해 영속적으로 또한 사적으로 점취된 토지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잘 보여주는 글자가 ‘거居[정자正字는 ?]’이다. ‘거’는 조상의 시체[尸, 주검 시]를 깔고 앉은 모양[?, 안석 궤]이다(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字統』에서 이를, 조상 제사 때 시주尸主인 사람이 궤?에 허리를 걸치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이는 금문金文을 근거로 말한 것이다, 갑골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전해진 가부장의 권리가 배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토지는 ‘하늘이 준 보물 창고’, ‘신이 내린 선물’이자 동시에 홍수나 가뭄을 가져오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토지는 신이 되며 토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는 동물 역시 그러한 존재였다. 동물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을 잡아먹기도 한다. 따라서 동물도 신이 된다. 사람들이 토지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처럼 동물 역시 사람이기도 하였다. 농경과 더불어 길들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동물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강화되고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다. 동아시아에서는 가부장제 및 사적소유의 발전과 더불어 조상신인 제帝로 바뀌고(상나라) 왕권이 강화되면서부터는 도덕적 명령을 내리는 천天으로 바뀐다(주나라). 춘추전국시대는 다시 천에서 도道로 바뀌는 시기였다. 이제 토지는 대상이 되고 마찬가지로 동물 역시 대상이 되었다.
아시아적 형태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연의 힘이 신과 같은 절대적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거기에 대응하는 공동체 역시 절대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수장은 자연인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격, 곧 신격적神格的인 존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의 능력은 오로지 공동체 나아가 수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므로 개인은 공동체 또는 수장 또는 신의 소유로 의식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전제주의’와 정체성의 기초가 된다. 이는 ‘인격적 의존관계’로서 자연발생적으로 또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개인의 인격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종의 노예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이 노예라는 존재 또는 노예 의식과는 다르다. 노예는 자신의 노동력은 물론 자신의 몸까지 제3자에게 소유당한 자임에 비해 이들은 비록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지만 자신의 노동력과 몸은 자신의 것이다. 또한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으면서도 사적 점유에 의한 사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노동에서 오는 소외가 없으며 분배에서 오는 소외 역시 없었다. 노예 의식 역시 생길 수 없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대신 공동체가 있었고 신이 있었다. 공동체는 나이고 신 역시 나였다. 그러므로 이들이 속한 공동체는 에덴동산이나 파라다이스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었다.
한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특정한 지역을 다른 곳과 구분하여 경계를 짓는 일이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수렵 채취 사회의 인간에게도 자신의 영역이 있지만 이는 자연 조건에 따라 늘 변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자연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자연이 흐르는 것이 된다.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 역시 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나뉜다. 길들여진 곡식이나 동물과 더불어 자연은 더 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조작하는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자연은 신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하늘은 명령을 내리지만[천명天命] 그 명령은 벌써 인간의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자의 명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은 이때 벌써 죽었다. 적어도 지배자에게 있어서는.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