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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11> 혼돈과 질서
흙살림 조회수 385회 19-01-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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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11 혼돈과 질서

 

 

태초에 빛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혼돈이 있어야 한다. 빛은 어둠과 밝음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빛이 생겼다는 말은 그 전에 어둠과 밝음이 없는 혼돈이 있었다는 말이다. 『장자』에는 혼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쪽 바다의 황제[帝]는 숙?이고 북쪽 바다의 황제는 홀忽이며 한 가운데의 황제는 혼돈混沌이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이 노니는 곳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대접을 아주 잘 해주자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사람은 다 일곱 구멍[칠규七竅]이 있어서 그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쉰다. 그런데 혼돈은 구멍이 없으니 한번 구멍을 뚫어주자”고 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구멍을 하나씩 뚫었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장자』 ?응제왕?).

 

‘숙’은 ‘빨리’라는 뜻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며 ‘홀’은 ‘홀연히’라는 뜻으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각각 남쪽의 밝음과 북쪽의 어두움을 상징하면서 나타남과 사라짐, 곧 유와 무의 구분을 뜻한다. 이를 한 마디로 음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숙과 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어서 여기에서부터 시간, 곧 역사가 시작됨을 알 수 있다.

혼돈은 구멍이 없다는 뜻이다(崔?). 오늘날에도 혼돈(??, 훈둔)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탕 속에 만두가 떠 있는 음식이다. 황하를 건너는 혼돈도 있다. 소가죽으로 만든 튜브 같은 것인데 치이?夷라고도 한다. 만두나 치이나 구멍을 뚫으면 가라앉는다(‘치이’는 범려范?의 치이자피?夷子皮에서 나온 말로, 범려는 월나라 사람으로 제나라로 가서 장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혼돈은 숙과 홀로 상징되는 음양에 의해 죽었다. 음양은 사람이 대상을 인위적으로, 대립되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돈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밝음 같은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이 없는 세계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는 세계다. 사람은 동물이 될 수 있고 동물도 사람이 될 수 있다. 숲에는 정령精靈이 숨 쉬고 있다. 이는 신화와 샤머니즘의 세계다. 그러므로 혼돈은 혼란이 아니라 음양이라는 인위적 구분이나 문명이라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아마도 노자나 장자는 이런 상태를 자연이라고 했을 것이다.

자연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자연에 사람의 지각을 부여하는 일이며 나아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일곱 개의 구멍은 눈과 코, 귀, 입의 일곱 구멍으로, 이는 사람의 몸 안의 기와 외부의 기가 소통하는 곳인데, 이 구멍을 총괄하는 것은 심心이다. 심은 단순히 감각하고 운동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이나 기억들을 연결하여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혼돈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해파리의 예를 들어보자. 해파리는 수온이 낮아지면 군체를 이룬다. 서로 달라붙어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큰 것은 30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이때 앞쪽은 머리가 되고 뒤쪽이 꼬리가 되며 가운데는 생식기 역할을 한다. 해파리는 먹고 생식하기 위해 운동하는 데(앞에서 고자告子는 이를 식색食色이라고 하였다), 군체를 이룬 각각의 세포는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식색을 위한 세포 사이의 의사소통과 통일된 운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신경세포다. 그러므로 다세포 동식물이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중추신경의 진화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각각의 단위세포들은 각자의 자율성을 포기해야 한다. 개체라는 부분의 자유가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혼돈의 죽음은 이런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죽음은 말 그대로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었다.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혼돈의 죽음으로 탄생한 세상은 자연이 아닌 사람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시간의 질서요 공간의 질서, 곧 문명의 질서였다. 그 사람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나라 때 한산寒山의 시를 보자.

 

즐겁구나, 혼돈의 몸은. 먹지도 않으니 싸지도 않는구나

어쩌다 뚫기 좋아하는 놈 만나 아홉 구멍 갖추고 나니

매일 옷과 음식 짓기 바쁘고 매년 세금 근심뿐

온 사람들 돈 한 푼을 다투고, 머리 디밀고 죽어라 울부짖네(快哉混沌身, 不飯復不尿. 遭得誰讚鑿, 因玆立九竅. 朝朝爲衣食, 歲歲愁租調. 千箇?一錢, 聚頭亡命叫).

글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