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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10
맹자와 고자의 논쟁은 당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고 또한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맹자의 제자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며 이후에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자가 죽고 70제자도 죽고 나자 양자楊子(양주)와 묵자의 무리가 나왔다. 맹자는 공자의 도를 밝혀 이를 바로잡았다. 이후에 그의 주장은 실현되지 못한 채 천 년이 더 지났다”(?백록서당책문?, 황준걸, 『이천 년 맹자를 읽다』에서 재인용). 그러나 아직도 맹자를 말하면서 성선에 대립되는 것으로 성악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맹자에 대한 이해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주희 역시 고자의 설을 순자의 성악설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맹자집주』). 맹자에게 선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불선不善이다. ‘악惡’은 ‘오惡(미워함)’일 뿐이다. 불선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맹자집주』).
고자와의 논쟁을 통해서 맹자는 도덕道德의 단초를 얻었다. 마침내 사단四端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단의 출발은 경험이다. 그 경험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견딜 수 없는 마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 곧 불인不忍이다. 이 불인의 마음에서 동정심[측은지심惻隱之心]이 나온다. 그런데 전근대의 동아시아에서의 개인은 다른 개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개인’은 그러한 관계의 결과로서 실현된 것이다. 차마 그러지 못하는 ‘불인의 반응’은 고립된 객체로서의 ‘나’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일으키는 관계[현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겪는 고통은 내가 그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이상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상대는 말 그대로 남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는 ‘주체로서의 자아’라는 차원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로서 느끼는 것이다(줄리앙,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불인이라는 반응 역시 이런 관계 속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는 선이 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자와 맹자는 인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논쟁하였다.
아마도 맹자가 고자와의 논쟁에서 의도했던 바는 누군가가 위험할 때 불현 듯 나타나는 ‘불인의 반응’이 바로 공동체를 구성한다[활기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줄리앙)이었을 것이다. 맹자에게 도덕성은 단지 우리 마음속에 실마리[端]로서만 존재한다. 이를 깨닫고 동정심과 같은 반응을 보이면 그 실마리는 경험의 차원으로 나타난다(줄리앙).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다시 공동체를 구성하게 된다. 맹자는 고자와의 논쟁을 통해 그러한 모든 실마리[사단]가 모두 내게 갖춰져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며 이제 이를 확충하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같은 부류[類]가 되며 성인도 나와 같은 부류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맹자는 인간이 최고의 경지인 성인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문제는 맹자가 예를 들어 말한 것처럼, “사람의 입맛은 모두 같다”고 하여 사람의 입맛은 모두 같아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거나, 사람에게는 하늘이 준 작위가 있고 그 얼마나 잘 닦는가에 따라 사람이 주는 사회적 신분이 따른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맹자의 성性에 관한 논의로는 동물 나아가 무생물을 포함한 자연과 관계 맺을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맹자에게 동물에 대한 동정심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맹자에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보지 못하는 동정심은 자신이 직접 소를 잡지 않거나 소 잡는 것을 보지 않거나(“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한다.” ?양혜왕상?) 다른 동물을 대신 희생으로 삼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겁에 질린 소에 대한 동정심을 사람의 사회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맹자와 고자와의 논쟁을 살펴본 것은 ‘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자는 나의 성性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인仁을 내세워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한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인하지 않은 것은 불인不仁이다. 불인은 뻣뻣하게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것이다(마목불인麻木不仁). 인하기 위해서는 느껴야 한다. 공자에게 그 느낌은 무엇보다도 편안함[安]이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야 느낄 수 있다. 잘못된 실천을 불편해할 수 있어야 인할 수 있다. 공자에게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나였다. 또한 불편함에서 나와 상대를 돌이켜보고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나였다[克己]. 이는 뒤에 도가의 인순仁順 개념의 맹아처럼 보인다. 공자의 인은 이런 점에서 사회는 물론 내 몸과 자연을 포함할 가능성을 갖는다.
반면 양주에게 나는 욕망의 주체였다. 욕구하는 나의 본성에 따라 내 생명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곧 사회와 자연의 질서를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자는 나의 본성을 식食과 색色, 곧 생존과 번식이라고 보았다. 이를 확대하면 자연과 사회 역시 각각의 본성대로 자신의 생명을 온전하게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나는 사회, 곧 공동체에 대한 지향 때문에 자연과 몸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농업을 비롯한 다른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와 음악 등의 예술 분야는 대개 그 철학의 기초를 도교에 두고 있다. 그래서 농업의 철학적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노장을 비롯하여『관자』, 『여씨춘추』, 『회남자』 등의 저작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 너무 방대하고 깊은 내용이어서 감당하기 힘들다. 먼저 『관자』 사편을 중심으로 읽어나가기로 하겠다.
글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