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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의 지혜 - 9월 초록짐승과 농부의 땀이 수정이슬로 변할 때
흙살림 조회수 589회 18-09-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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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태풍 솔릭이 동해로 빠져나갔습니다. 맞이하는 마음이 극진해선지 큰 피해 없이 지나간 것은 대행인데 괴산에는 비가 충분치 못했습니다. 긴 폭염과 가뭄 끝이어서 염려도 기대도 컸는데 올해 마지막 작물인 배추를 심기에도 모자라는 비입니다. 어르신들 말에 의하면 배추는 처서 이슬을 맞아야한다고 합니다. 미룰 수 없어 배추 모종을 하고 9월로 넘어갑니다. 다음은 이 무렵 읍내 진풍경입니다. “자주 가는 시장통 국밥집/ 남자들이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흙투성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를 틈타/ 종일 배추 심고 저녁 드시러 온 것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술께나 하는 단골손님 몰골 보며/ 오늘은 멋있다며 웃자 얼릉 술국이나 달라는데/ 한 분이 어젠 문 닫으셨더라고 하니까/ 비 예보가 있어 동생네 배추 심었다고 한다/ 금비! 한 달 넘게 지속된 가뭄과 폭염 끝에 내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오늘은 괴산 농가 전부가/ 배추 심는 날이었을 것이다/ 아마 읍내 깨끗하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음식점은/ 일당日當 아주머니들로 꽉 찼을 것이고/ 처서 이슬 맞아야 한다는 배추 모종들도/ 저들끼리 흙냄새 맡으며 기분 좋겠다/ 비 다녀가시니 시름시름하던 세상이/ 기적처럼 생생해지신다”(「비가 다녀가시자」 전문)

그리고 들어서는 9월은 절기 백로(白露)와 추분(秋分)이 든 달입니다. 백로(白露)는 9월 8일로,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이슬이 맺힌다는 때입니다. 이 이슬을 대지라는 초록짐승이 사력을 다하여 흘린 땀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초록짐승도 “짐을 잔뜩 싣고 온 몸을 쥐어짜듯 언덕배기를 힘겹게”(이덕규「白露」에서)올라섰고, 수고하신 농부님들 얼굴에도 땀방울 맺힙니다. 그 흰 이슬(白露)을 고재종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정(水晶)이라고 합니다. “차랑차랑, 순금 이삭 일렁이는/ 추분의 들판에 서서/ 먼 곳으로 고개를 드는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나의 경전이다// 지난여름 큰비 큰바람에/ 죄다 꺾인 닷 마지기 논을/ 죄다 일으켜 세우고/ 당신의 허리가 꺾이어선/ 자리보전하는 어머니를 나는 안다// 시방 김제 만경 들판에 가보아라/ 하늘이 어쩌려고/ 그토록 순금 햇살을 쏟아 붓는지/ 쏟아 부어선 따글따글 익히는 게/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아닐는지”(「경전」에서) 대지도 하늘도 농부도 사력을 다한 땀방울이 뙤약볕의 연금술처럼 수정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풍경이 괴산에서는 햇살 번지는 콩밭입니다.

“이슬 때문일까/ 아침 콩밭이/ 유난히 청량淸?한데/ 그냥 순한 여자엉덩이가 떠올랐다/ 삼십 이년 교직생활을 병 때문에 학기 중에 끝내야 했던 아내가/ 마지막 출근 하려고 샤워 하고/ 남편 새벽잠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며 옷장을 열 때/ 실눈 뜨고 보았던 그 엉덩이/ 내 눈에 눈물이 맺혀야/ 진정 눈부신 거다/ 그래선지 콩잎에 맺힌 눈물들엔/ 돌이킬 수 없이 가을로 들어선/ 빛의 순한 엉덩이/ 가득/ 청량하다”(「백로白露 지나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