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흙살림 -월령의 지혜를 배운다
7월, 생명의 어머니인 논을 보아라

7월은 소서(小暑)와 대서(大暑)가 들어 있는 달입니다. 염소뿔도 녹인다는 무더위와 돌도 자라게 한다는 많은 비가 초록 생명들과 뒤엉켜 뜨거운 사랑을 하는 때입니다. 그 결과이듯 7월 중순을 지나면 논벼 이삭 패고 꽃이 핍니다. 흙살림 이태근 대표를 따라다니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논은 쌀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생명의 어머니로서, 생명을 잉태하는 장소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전에 흙살림 창립기념 행사 자리에서 매우 인상적인 짧은 축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흙살림이 어땠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테니 각설하고, 저는 이태근 회장께 숙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린아이들과 모내기를 하는데 흙이 더럽다고 만지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흙이 깨끗한 것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십시오.”(이 축사를 하신 분은 흙살림신문 6월호에 특별대담을 한 권영근 소장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농장 일을 하며 시나부랭이를 쓰던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며칠을 쥐어짜다 마침 하나의 이미지가 팍 떠올랐습니다. 엄마 젖을 빨면서 손으로 다른 쪽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아기! 그래서 혼자 중얼거려봤습니다. “모내기는 아기가 엄마 젖을 무는 것이란다. 너희들을 이만큼 건강하게 키운 엄마 젖이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 것이겠어. 논흙은 벼를 살게 하는 엄마 젖이란다. 그러니 얼마나 깨끗하겠어. 한번 만져봐. 옛날에 너희들이 엄마 젖을 먹으며 한손으로 다른 쪽 젖을 만지던 그 느낌이 생각날 거야. 자, 이렇게-”(「어떤 축사를 듣다가 생각함」에서) 그렇게 6월 2일 농사예술제 때 꼬맹이농부님들이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했습니다. 무릎이 아파 구경할 수밖에 없었던 저는 그 작은 손들이 만지는 흙이 사랑하는 엄마의 젖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바라보았습니다.
7월은 그런 천지의 사랑이 벼꽃을 냅니다.
벼꽃
- 오철수
소서小暑 지나면
이삭 패고 벼꽃이 핀다
꽃이 수정되어야 쌀알이 들어차는 것이니
그 작은 한 톨 한 톨 전부
꽃을 피우는 것인데
꽃 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쌀 한 톨을 맺는 꽃이니
너무 작기도 하려니와
벼 껍질을 열고 피어
두 시간 정도 수정을 끝내고 껍질을 닫는
정말 눈 깜박할 사이의 흰꽃
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생식生殖을 위해 핀다는 걸 알지만
내 꽃도 그랬음을 알지만
너무 인간적인 나는 아쉽다
이제라도 알맹이를 채우는 나날이
불볕과 비와 바람과 들판의 거대한 교향악이 아니라면
인간적인 나는 정말 서러울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벼꽃은
열매를 위해 제 아름다움을
순간의 꽃으로 세상에 주신 모든 어머니 같은
황금빛 들판의 교향시交響詩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