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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4> 공자의 "나"는 누구인가
흙살림 조회수 651회 18-05-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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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04

   

공자의 ‘나’는 누구인가

 

앞에서 양주는 ‘위아爲我’를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말이 아니다. 양주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 사람은 맹자다. 그러나 ??여씨춘추?? ?불이不二?에서는 양주가 ‘귀기貴己’했다고 말한다. 맹자가 이를 위아로 바꾼 것은 양주를 무군無君, 곧 군주에 의한 지배라고 하는 사회질서를 없애려는 자로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생명[기己]을 중시하고 그것이 외부의 사물[물物]에 얽매이지 않기를 강조한 양주의 문제제기를, 맹자는 나와 남[인아人我]의 문제로 바꾸었다. 그래서 양주를 세상의 이익[리利]을 위해서는 자신의 터럭 하나도 뽑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터럭 이야기도 양주가 한 말이 아니고 백성자고伯成子高가 한 말이다). 양주는 이기利己를 말한 적이 없다.

양주가 말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을 가벼이 여기고 삶을 무겁게 여겨(輕物重生) 외부의 사물에 몸을 얽매이지 말라는 것(不以物累形)과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드러나게 하고 내 몸의 참된 것을 보전하라는 것(全性保眞. 『淮南子』 ?氾論訓?), 사회적으로는 어진 일을 행하되 스스로를 어질다 여기는 마음을 없애라는 것(행현이거자현지심行賢而去自賢之心. 『韓非子』 ?說林上?) 등이다.

춘추시대에 ‘나’라는 개체를 뜻하는 단어는 ‘기己’였다. 공자에게 있어 ‘기’는 끊임없이 외부, 곧 일(사회적 측면=사람의 일)과 사물(자연적 측면)에 대해 실천하며 그 실천 과정에서 지나침이 있는지 되돌아보고 지나친 것을 고쳐나가는 자기였다. 한 마디로 극기克己하는 자기였다.

고쳐나감의 기준은 ‘나’라는 개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편안함[安]’과 ‘이로움[利]’이다(『논어』 4.2). 여기에 ‘좋아함[好]’이나 ‘즐거움[樂]’과 같은 감정이 포함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자에게 편안함의 기준은 나라는 개체[己]라기보다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나[我]와 남[人] 사이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다. 인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공자에게 있어서 나의 감정, 나아가 욕망이라는 문제는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고쳐나감의 기준으로, 편안함 대신에 예禮나 의義가 들어서면 개인은 더 이상 욕망하는 주체로 나설 수 없게 된다.

또한 공자의 나[己]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는 존재다. 『논어』에 끊임없이 나오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내가 남의 평가를 통해서만 인仁함을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양주는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귀한 것이라는 자각은 타인의 인정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욕구하는 내 몸[己]을 인정하는 것이다. 생명에의 충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욕구는 사람의 본성[性]이다. 양주는 이 본성을 온전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눈은 좋은 것을 보려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뒤에 고자告子는 이를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食色, 性也]’이라고 말한다. 양주는 이런 점에서 사람의 ‘성’이라는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사상가로 평가된다(그레이엄, 『도의 논쟁자들』. 『논어』 17.2에서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라는 구절에서의 ‘性’은 ‘生’으로 본다).

양주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그가 쾌락주의자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양주는 ‘종욕縱欲’이 아니라 ‘절욕節欲’을 말했다(‘종욕’도 사실은 욕망의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다). ‘절욕’이란 욕망의 억제가 아니라 욕망을 적절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양주는 안빈락도安貧樂道가 아니라 안빈락생安貧樂生, 곧 삶을 즐김으로써 가난함도 편안하게 여긴다. 또 하나는 양주가 생명을 절대시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양주는 사회적으로는 어짊을 실천할 것[行賢]을 요구했으며 다만 스스로를 어질다고 여기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이런 예는 『열자』의 여러 편에서 양주가 이타적 행위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묘사된 것으로도 반증될 수 있을 것이다.

몸의 틀인 형形(이는 몸의 집, 곧 몸집이다)과 그 몸을 채우는 기氣와의 관계, 움직이며 살아가는, 운동하는 몸인 신身과 구조물로서의 몸인 체體, 몸과 마음의 관계 등에 관한 논의는 『관자』의 사편四篇(?心術上下?, ?백심白心?, ?내업內業?)을 비롯하여 『여씨춘추』나 『회남자』, 『열자』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어졌다(『관자』 ?水地?, ?地員?, ?度地? 등). 이러한 논의는 의가醫家와 농가農家의 철학적 기초가 된다. 동아시아의 전근대에 있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들라고 하면 농업과 의학을 들어야 할 것이고 하나만 들라고 하면 농업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철학은 농업과 의학을 배제해왔다.

니덤은 동아시아의 전근대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과학은 한의학이라고 하였지만, 필자는 한의학만이 아니라 농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근대 과학과 사유방식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본다. 음식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거의 모든 음식(무엇을 먹을 것인가)과 그 요리법(어떻게 먹을 것인가)은 오래된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이는 각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그것과 다른 본성과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반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농업과 의학이 ‘과학사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