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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3> 나는 어떻게 생겨났나?
흙살림 조회수 225회 18-04-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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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03


‘나’는 어떻게 생겨났나?


양주는 위아爲我를 말했다. ‘나를 위한다’는 말인데, 이 평범하게 보이는 말이 왜 그렇게 위험한 말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여기에서 말하는 ‘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나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최초에 개인은 아마도 자연과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연과 공동체에 매몰되어 있을 때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동물이 거울을 보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나’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다.


자연에 매몰된 개인은 토템이라는 말로 상징된다. 만물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고 나는 그러한 신령과 대화하고 같이 살아가는 존재다. 신, 곧 자연과 나는 하나였다. 고대의 성왕이라고 불리는 요순우堯舜禹라는 이름 자체가 토템이었다(요순은 새, 우는 곰)는 사실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공동체에 매몰된 개인은 나를 가리키는 ‘아我’라는 글자의 어원에 나타난다. ‘아’의 갑골문은 이다. 상대를 찍어서 ‘자기쪽으로 잡아 당기는’ 창[과戈]의 모양이다. 이 창의 용도는 첫째는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내부의 구성원을 징벌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욕망하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나는 공동체에 매몰되어 공동체를 지키는 전사戰士의 개념이다.


그러던 ‘나’는 농경이 시작되고 생산력이 증가하게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생산력의 증가는 자연에의 매몰에서 인간을 벗어나게 한다. 이제 자연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생긴 잉여는 개인의 욕망을 자극한다. 여기에서 최초의 폭력이 탄생한다. 이 폭력은 잉여를 더 많이, 지속적으로 차지하기 위한 폭력[역力]이다. 잉여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남을 갈라야 한다. 지속적으로 차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믿을만한 사람, 곧 혈연에 의지해야 한다(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혈연은 모계에서 부계로 전환된 혈연이다). 나와 남을 가르면서 사적 소유가 생기고 혈연에 기초한 상습이라는 제도가 생긴다. 폭력을 가진 남자와 그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제가 생기고 그것이 확장된 종법에 기초한 하상주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라는 어둠을 숭배하여 초저녁에 제사지냈고 상나라는 밝음을 숭배하여 낮에 제사를 지냈으며 주나라는 문화[문채文彩]를 숭상하여 예禮가 복잡했으므로 하루 종일 제사지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王治心, ??중국종교사상사??) 하, 상나라와 주나라는 발전 단계가 서로 달랐다. 곧 주나라는 어둠이나 밝음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나라였다. 이는 곧 자연보다는 사람 사이의 사유와 혈연에 기초한 세습이라는 문제가 더 심각한 과제로 된 나라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생산력은 계속 늘어났고 이에 따라 개인의 욕망도 늘어났다. 잉여를 사유하던 사람들은 더 많은 잉여를 바랐고 이는 생산력의 기초인 땅과 사람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또한 자기 땅에서 새로운 잉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런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또한 혈연에 기초한 세습이라는 제도는 피라미드식의 가지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대종에서 갈라진 소종은 대종의 잠재적인 경쟁자였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경쟁하고 투쟁하는 집단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나’라는 개념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 나[아我]는 더 이상 자연과 공동체에 매몰된 개인이 아니라 욕망하는 주체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시詩’에 나오는 ‘아’라는 글자가 사랑이라는 이미지와 동시에 우울이나 걱정, 나아가 저주, 분노, 원망 등의 이미지와 연관되기 시작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신정근, ??사람다움의 발견??). 공자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인仁을 내세워 주나라의 찬란한 문화와 그 형식인 예로 돌아갈 것을 외쳤고 양주는 새롭게 피어나는 개인의 욕망에 기초한 나를 내세웠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의 긴장과 다툼은 이후 전개되는 전국시대의 피비린내를 예고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과정의 진행의 바탕에는 소농小農의 발전이라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깔려 있다. 왜냐하면 소농이야말로 당시 생산력을 담보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생산주체였기 때문이다.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