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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봄의 첫 문장은 뭘까요?
흙살림 조회수 228회 18-02-0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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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월령의 지혜를 배운다

  2월, 봄의 첫 문장은 뭘까요?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들어 있습니다. 내내 춥기는 합니다만 겨울에서 봄으로 엄연히 절기가 변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런 변화를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하고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이월」)고 합니다.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절기는 겨울을 넘어선 것입니다. 입춘(立春)이라는 한자를 몰라도 나무와 들이 봄을 품습니다. 피라미들도 “얼다 녹은 냇물에/ 살얼음 낀다 살얼음 밟듯/ 목숨 걸고 봄이 오는지 ?줄임- 하얀 뱃바닥으로 살얼음을 만져보고/ 갸웃거리며 다시”(정양 「입춘」에서)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것들이 봄을 세우니 우리 마음도 그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봄의 첫 문장은 무엇일까요?

 

아궁이의 불을 지피고

개똥 무더기 치우고 나서

혹한에 얼어 죽을까 염려되어

겨우내 감싸둔

어린 감나무의 짚붕대를 풀어주었네

짚붕대를 풀자

입을 꽉 다문 연둣빛 잎눈이

온종일 침묵을 지킨 내 입을 열었네

오, 살아 있었구나!

무심코 잎눈과 나눈 첫 문장이었네

                               - 고진하 「입춘」 부분

 

봄의 첫 문장은 “오, 살아 있었구나!”입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 생명 세계에서 봄의 첫 문장은 “오, 살아 있었구나!”여야만 한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겨울을 지낸 생명세상에서 생명에 대한 안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심코 “오, 살아 있었구나!”라는 말이 나온 것은 자신을 포함한 생명세계에 대한 공감이고 긍정입니다.

그리고 둘러보면 부지런한 것들이 이미 봄을 제 몸에서 불러내고 있습니다. “우수 앞두고/ 비가 왔다// 해가 들자/ 산 능선이 순해지며/ 붉은 기운이 도는 듯 했다”(오철수 「봄비 오시다」에서), “雨水는/ 스스로 동안거에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허옇게 정진하다가/ 이제 막 깨달아 녹아떨어지는/ 탄성의 소리”(오철수 「우수는」에서), “논두렁 밑 양지녘엔/ 벌써 저리 냉이꽃 반짝이네// 얼음에 뜬 애보리조차/ 지상으로 힘껏 떠미는 뜨거움이여/ 덧짚 걷어낸 마늘밭엔/ 벌써 저리 마늘촉 서늘하네”(고재종 「우수」에서).

이제 그 자연의 것들과 한해살이를 준비할 때입니다.

그 마음이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삼방리 흙살림농장 상전은/ 돼지와 염소다/ 그놈 죽이지 않으려고/ 영하 21도 주말 아침에/ 먹이 주러온다/직원 100명이 넘는 흙살림대표 이태근이/ 유기농 사과와 배와 방울토마토와 기타 등등/ ‘파지’라고 불리는 조금 뭉그러진 유기농 식품을 싣고 와/ 살았구나, 먹어라, 고맙다/ 한 놈 한 놈/ 눈 맞추며 준다/ 저놈들이 멀쩡하게 눈 뜨고/ 자기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어쩌겠냐며/ 씨익 웃는 그 얼굴을 믿으며/ 삼방리농장 상전은/ 유기농사과를 와삭와삭 씹어 먹는다/ 그 소리가 좋다고/ 빙긋 웃는다”(「상전上典과 더불어 -이태근에게」)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