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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1>
남의 희생 위에 잘먹고 잘사는 지배층을 비판한 <격양가>
해 뜨면 일하고 日出而作
해 지면 쉬고 日入而息
우물 파 마시고 鑿井而飮
밭 갈아 먹으니 耕田而食
제왕의 짓거리가 내게 무슨 상관있으랴 帝力于我何有哉(황보밀皇甫謐, <고사전高士傳>에 실린 양보壤父의 시)
이 시는 배와 땅을 두드리며 부르는 ?격양가擊壤歌?라는 시인데, 보통은 요임금의 태평성대를 기리는 농민의 노래로 알려졌다.
이 시에서 ‘제력帝力’은 제왕의 인위적인 행위, 곧 권력 행사를 말한다. 그 인위적인 힘은 상하를 나누어 위 것들은 일하지 않으면서도 배불리 먹고 아랫것들은 고통스럽게 일하면서도 배를 굶주리는 현실을 만들고 유지하며 확대하는 힘이다. 이러한 힘을 비판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 중에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여 산이나 전원으로 가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을 은사隱士(또는 은자隱者, 일사逸士, 처사處士, 일민逸民, 고사高士)라고 한다. 이는 사士 이상의 출신으로, 출세할 수 없거나 출세 자체를 포기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개인이 아니라 과거 사회의 한 계층이었다.
이들은 과거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인정을 받는 특수한 존재였다. 그래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은사는 몸을 숨겨 드러내지 않는 자도 아니며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자도 아니며 지식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자도 아니었다. 다만 시운時運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장자莊子> ?선성繕性?).
이들은 벼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속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그러므로 세속에 얽매인 다른 사상가나 정치가와 달리 이상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관점을 취할 수 있었다. 이들은 농사를 지었다는 점에서는 자연주의자였고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주의자였다. 공자를 비웃은 초나라의 장저長沮, 걸익桀溺, 접여接輿 등이 그러한 사람이며 맹자를 비판한 고자告子 같은 사람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은사의 실제 생활은 일반 농민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은사들은 농사를 직접 지었지만 육체보다는 정신노동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었다. 또한 농경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계층이었지만 이들은 자기 소유의 집과 토지가 있었고 은사라는 신분의 특수성으로 인해 권력자들의 존중을 받아 대다수 농민이 누릴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혜택을 누렸다(姜炅範, <중국은사문화>).
비록 은사가 특권층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노동하여 먹고 산다는 점에서, 남의 희생에 의해 먹고 사는 이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은사 중에 신농神農이 있었고 여기에서 농경을 하나의 사상체계로 발전시킨 농가農家가 나온다(앤거스 그래이엄, <도의 논쟁자들>).
위의 시는 바로 그러한 은사의 시이다. 유가儒家들은 이 시를 두고 천편일률적으로 요임금의 태평성대를 노래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고의적인 왜곡일 뿐이다. 이 시는 요임금 시대의 한 은사隱士가 요임금을 비판하는, 남의 희생 위에 잘 먹고 잘 사는 지배층 모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노래였다.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