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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친환경 무농약의 역설
흙살림 조회수 323회 18-02-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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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친환경 ‘무농약’의 역설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빼놓지 않고 제시되는 것이 바로 학교급식과 공공급식 분야이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학교와 공공분야에 친환경농산물이 공급된다면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도 친환경농산물 유통의 상당부분을 학교급식이 책임지고 있다. 특히 곡류와 엽채류 소비에 학교급식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국내 친환경농산물 유통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생협 시장을 제외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친환경농산물이란 과연 어떤 농산물을 말하는 것인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하는 것들이 친환경농산물을 지칭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 어떠한 화학적인 합성 물질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산물과 양액재배가 가능하고 화학비료를 권장량의 1/3 이하로 사용할 수 있는 무농약 농산물은 엄연히 수준이 다르다. 현행법 상 유기농재배 기준을 충족시키더라도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무농약 인증을 받고 유기농전환기(논, 밭작물의 경우 2년, 과수는 3년)를 거쳐야만 한다. 농사를 처음 짓거나 관행방식으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서서히 친환경농업에 적응하여 완전한 친환경농업의 형태인 유기농업을 종착지로 삼을 수 있게끔 마련된 제도이다. 그것이 본래 친환경농업의 지향점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초창기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은 생협 등 의식 있는 소비자 그룹의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농민들이 뜻을 가지고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면 기꺼이 비싼 가격에 구입해주는 소비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정부 주도의 친환경농업육성정책이 만들어졌고 소통이 아닌 제도에 의한 친환경농업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농업을 끌고 왔던 농민과 소비자의 ‘의식’이라는 부분은 시장경제의 논리로 대체되어버렸다. 그 증거가 바로 무농약 농산물의 수요증가이다. 무농약농산물은 화학비료를 일정량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기농산물보다 보기가 좋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겉모양을 보고 농산물을 구매한다. 시장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만을 취급한다. 농민은 농산물을 팔기위해 무농약 재배 방식을 선택한다. 안전성과 도농상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친환경학교급식에서조차 모양만 보고 농산물을 품위 기준을 정한다. 당연히 무농약 농산물이 취급 기준이 될 수 밖 에 없다. 국내 친환경농산물 유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급식에서 무농약 농산물이 중심이 되어있는데 농민이 굳이 유기농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유기농산물과 무농약농산물은 그 수준이 다르다. 수준이라 함은 재배방식이 환경에 기여하는 정도, 인위적인 물질 투입 여부, 안전성 등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안전성 부분에서만 봐도 유기농산물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안전성은 농약의 사용 여부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질소비료로부터 식물이 흡수한 질산염은 우리의 체내에서 아질산염으로 바뀌는데 이때 함께 섭취한 육류나 생선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아민과 결합하여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이 된다. 건강을 위해 채소와 고기를 함께 먹지만 질산염이 많은 채소라면 안 먹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화학비료는 토양 내 염류를 집적시키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친환경농업, 위선의 가면을 벗자’라는 말은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 정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친환경농업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한 시장은 절대 유기농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난 20여 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 동안 법을 수십 번 바꾸고 수많은 땜질식 처방을 만들어 왔지만 친환경농업육성법을 만들 당시의 그 지향점과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친환경농업 안에 무농약농산물을 슬쩍 끼워 넣고 만족해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위선이다. 이제라도 이 위선의 가면을 벗고 유기농업이 이 땅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이다.      

글 이태근 흙살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