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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건강한 생명력만 겨울을 기른다
소한과 대한이 들어 있는 1월은 낮도 영하권입니다. 흙살림토종농장에는 김종구 교수의 조각상 <흙의 여신>이 텅 빈 농장을 내려다보며 겨울을 기릅니다. 올 한해 농사일로 고생한 미생물 농부님이 흙 깊이에서 겨울잠을 잘 주무시는지, 하우스 지황(地黃)은 볕을 아껴 잘 버티고 있는지, 잠시 일손 놓았던 농장주는 새마음으로 전국토 유기농업화 쟁기를 짊어질 몸만들기를 잘하고 있는지. 그렇게 겨울을 잘 길러야 건강한 봄이 만들어집니다. 그 마지막으로 폭설의 맛도 보여줍니다. 복효근 시인은 눈이 내리는 까닭을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보지 않은 푸나무들은/ 제 피워낼 꽃의 형상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 “꽃의 기억들을 일깨워주기 위해”(「눈이 내리는 까닭」)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폭설이 내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자, 폭설 속에서 날것으로 살아나는 건강한 생명력을 만나 한바탕 웃으면 알게 됩니다.
폭설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ㅡ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ㅡ 워매, 지랄나 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퍠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하느님이 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ㅡ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공적인 전언인데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라는 너무 사적인 표현이, 안방의 것이 마을로, 흰 바탕에 붉은 것이 튀어나옴으로써 웃음이 터집니다. 넉넉한 생명적 웃음입니다. 제설작업도 쉬이 해치웁니다. 이튿날은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정도로 쌓였습니다. 보통 힘 가지고 안 되는 상황이어서 녹초가 되게 일하고 삼겹살과 소주로 풉니다. 안방의 일 또한 해방됩니다. 그런데 다음날,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의 폭설입니다. 하지만 전혀 비극적이지 않게 딱 날것으로서의 생명만이 해학과 더불어 남았습니다. 바로 그 생명성이 건강한 봄을 맞이할 겁니다.
- 시인 오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