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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소설(小雪)을 소춘(小春)이라 부르듯이
소설(小雪)은 24절기 중 스무 번째로 11월 22일입니다. 적은 량이기는 하지만 눈이 내릴 때니 춥고 땅이 얼기 시작합니다. 최선을 다한 텅 빈 들녘에 드러난 흙의 표정은 정말이지 출산하신 몸의 자부심과 피로와 평온입니다. 낮으로는 아직 남아 있는 볕이 마치 봄볕처럼 따뜻해 아껴서 겨울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논밭일로 바빴던 농부의 겨울준비를 위해 하늘이 남겨둔 그 볕을 생각하며 다음 시를 읽어봅니다.
음력 시월
- 김영천
음력 시월을 이르는 말에
소춘 小春,
양월 良月,
응종 應鐘,
방동 方冬,
상동 上冬,
이렇듯 여러 말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작은 봄에
이렇듯 여러 이름이 있는 이유가 있을 터이어서요
나는 내 아내의 모든 병이 낫고
새로 찾아온 봄을 두고
참
오래 오래 감격해 하는 것입니다
입동과 소설이 들어 있는 음력 시월이 이처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자연의 걸음은 큰 방향에서는 겨울로 깊어가지만 추위와 따뜻함을 반복합니다. 소춘(小春)은 절기 소설(小雪)의 다른 이름인데 겨울 속 봄입니다. 겨울로 깊어가면서도 늦어진 겨울 준비에 말미를 주는 것입니다. 양월(良月)이라는 말도 음(陰)의 기운이 차오른 음력 10월이기는 하지만 양(陽)의 기운이 없지 않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응종(應鐘)은 십이율(十二律)의 열두 번째 음으로 음력 10월의 다른 이름이고, 방동(方冬)도 이제 막 겨울이라는 뜻이니 아직 남아 있는 볕이 있다는 것이고, 상동(上冬)도 이른 겨울을 뜻하니 아직 겨울로 가득 차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다 겨울로 전일화되지 않았음을 말하는 음력 10월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옛 분들은 겨울로 전일화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일까요? 아마 아직 남은 양의 기운을 귀하게 써 겨울을 준비하라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디언들도 이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을 것입니다.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정희성「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에서)
올 한해 흙살림에도 크고 작은 일이 많았습니다만 양의 기운을 아껴 지혜로운 겨울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