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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 다시 처음으로 깊게 건너가는 시간
흙살림 조회수 891회 17-11-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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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입동(立冬), 다시 처음으로 깊게 건너가는 시간

입동(立冬)은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로 11월 7일입니다. 겨울이 일어나는 이때의 가장 큰 특징은 추워지고 물과 땅이 ‘언다’는 것입니다. ‘언다’는 것은 더 이상 외부로 향하는 생명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들에게 겨울의 임무는 첫 번째가 지난해의 경험을 잘 갈무리하여 생명력으로 보존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겨우살이를 위해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을 비우는 일입니다. 대지가 얼어붙을 때 생명은 얼지 않게 하는 삶을 시작합니다. ‘언다’는 말은 생산 활동을 멈출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 채우고 있으면 ‘얼어 죽는다’는 엄정함도 포함합니다. 겨울이라는 말의 어원이 ‘집에 겻(겨시-,在)다’라고 하니, 어림잡아 봐도 겨울은 외부로 향하는 운동을 멈추고 깨끗이 비워내면서 자기 생명 안에 머물러 정중동의 시간에 드는 것과 관련합니다. 하지만 ‘철저한 비움’은 인간에겐 참 가혹한 일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비워야할 때 비우지 못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입동입니다. 비워야 합니다. 감나무에 몇 개 남은 감이 비움을 결단하는 고독을 보여줍니다. “지는 싸움에 전력하는 눈빛을/ 이제 고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는 사랑과 오고 있는 사랑 사이에서/ ?줄임- 슬픔을 더 많이 갖기로 했다// 선도 악도 사라진 얼굴을 문지를 수 있는/ 거친 손바닥을 갖기로 했다// 나도 그만 겨울이 되기로 했다”(황규관 「입동」에서) 나뭇가지에 몇 개 매달린 감빛이야말로 소유적 삶의 양식을 지나 존재적 삶의 양식을 생각하게 하는 10촉짜리 백열전등 불빛입니다. 지는 싸움에 전력하는 눈빛이야말로 존재의 완성을 추구하는 영성의 불빛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선도 악도 사라진 얼굴, 생산을 위해 가졌던 수많은 분별적 생각을 지우는 ‘나목(裸木)-되기’.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나도 그만 겨울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제법무상(諸法無相)을 실천하듯 마음을 비워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하여 천지의 행정(行程)을 따라 걷는 삶은 자기를 비웁니다. 비워야만 겨울을 통과하여 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동은 다시 ‘처음으로 건너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입동(立冬)

                 

                                                                      - 이상국

 

근대국을 끓여 먹고

마당의 어둠을 내려본다

 

근대국은 텁텁하고 또 쓸쓸하다

 

그 속에는 한여름 소나기와 자벌레의 고투와

밤하늘의 별빛이 들어 있다

 

비가 마당을 깨끗하게 쓸고 간 저녁

누군가 어둠을 바라보며 근대국을 먹는다는 것은

어딘가 깊은 곳을 건너간다는 것이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