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추분(秋分), 저만의 농담(濃淡)으로 자기를 완성할 때
추분(秋分)은 24절기의 열여섯 번째로 9월 23일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때로 이제부터는 태양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밤이 길어집니다.
“밤이 길어진다고/ 세월은 이 세상에/ 또 금을 긋는다”(정양「추분」에서) 물론 그 금은 도시생활에서는 하등 중요할 게 없습니다.
월급날과도 무관하고 고지서 납부하는 날과도 무관합니다.
하지만 우주율을 따르는 자연에겐 생 리듬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물이 마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초록이파리를 가진 것들은 단풍 들 채비를 해야 합니다.
낮아 짧아지기 시작하니 열매 맺는 곡식들은 완성을 서둘러야 합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추분 즈음하여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고추도 따서 말리며 그 밖에도 잡다한 가을걷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무렵 흙살림토종농장 한쪽에 토종볍씨 보존을 위한 논은 가히 꽃밭입니다.

초록색일 때는 비슷비슷하지만 벼이삭이 익어가는 백로를 지나면 종별로 저만의 색깔을 띱니다.
대표적으로 맥도 이삭은 분홍빛을 띠고, 쇠머리지장은 융단 같은 은금빛을 띠고, 원자벼 이삭은 상아빛, 강릉도는 적색에 가까운 황톳빛, 밭찰벼는 연녹빛, 흑저도 이삭은 검은빛입니다.
올해 심은 서른 네 종의 이삭들이 다 다른 빛깔로 익어갑니다.
근 한 달여 동안 햇볕에 따라, 바람에 따라, 날에 따라 달리 보이는 정말 황홀한 꽃밭입니다.
비유컨대 이 벼들은 이 땅의 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에서 살아남은 전사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이런 행운을 주기 위해 무상경제를 펼치시는 이맘때 햇볕은 특별한 느낌입니다.
뙤약볕
- 오철수
백로 들어서면서
햇살이 변한다
푹푹 찌는 무작정 뜨거운 볕이 아니라
작정한 따가움이다
마치 냄비 밥 할 때
한 번 후루룩 끓고 난 후
불꽃을 조정하며 마음에 그리는
어떤 느낌처럼
하나하나 찾아가는
하나하나 아무리는
하나하나 생의 목적을 끄집어내주는
이 연금술鍊金術의 마지막은
황금이삭이다
그래서 뙤약볕에는 골똘히 생각하며
하나하나 끄집어 올리는
황금빛 고리 같은 게 있다
“하나하나 생의 목적을 끄집어내주는/ 이 연금술鍊金術의 마지막은/ 황금이삭”입니다.
그 뜻을 알아 가을걷이를 앞둔 것들은 추분의 볕과 하나 되어 지금의 자기를 완성합니다.
물이 마르기 시작하는 이제쯤 나뭇잎들도 제가 살아온 인연의 몫과 노력의 농담(濃淡)에 의한 무늬와 색깔과 명도와 질감으로 단풍들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하지요. “익숙하지만/ 뭔가 낯선// 이제부터/ 낮이 짧아지며/ 혀, 붉어지리라// 저만 아는/ 농담濃淡으로”(조문경「추분(秋分)」에서)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
ㅇㅇㅇㅇㅇ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ㅇㅇㅇㅇㅇ
2017년 햅쌀이 나왔습니다. 은은한 팝콘향을 풍겨 그 맛을 더하는 <골든퀸>
명품쌀 구경 와보세요. ==> http://shop.heuksalim.com/goods/content.asp?guid=17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