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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땀방울을 수정으로 바꾸는 연금술
흙살림 조회수 399회 17-09-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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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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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 땀방울을 수정으로 바꾸는 연금술

백로(白露)는 9월 7일로,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이슬이 맺힌다는 때입니다. 여름이라는 힘 좋은 초록짐승이 입추를 맞아 ‘에이, 말로만 가을이구나’ 하며 그 관성대로 살다가, 처서를 지나면서 돌이킬 수 없이 가을에 들어섰다고 느끼면서, 있는 힘을 다해 본분사(本分事)에 매달려 정점을 찍어 그 땀이 수정으로 변하는 때가 백로입니다. 그래서 고정희 시인도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할 수 있게 진력을 다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대지의 더운 기운도 사력을 다했습니다. 초록짐승도 “짐을 잔뜩 싣고 온 몸을 쥐어짜듯 언덕배기를 힘겹게”(이덕규「白露」에서)올라섰습니다. 농부님들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한 얼굴에 흰 이슬(白露)이 맺힙니다. 그 흰 이슬을 고재종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정(水晶)이라고 합니다. “차랑차랑, 순금 이삭 일렁이는/ 추분의 들판에 서서/ 먼 곳으로 고개를 드는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나의 경전이다// 지난여름 큰비 큰바람에/ 죄다 꺾인 닷 마지기 논을/ 죄다 일으켜 세우고/ 당신의 허리가 꺾이어선/ 자리보전하는 어머니를 나는 안다// 시방 김제 만경 들판에 가보아라/ 하늘이 어쩌려고/ 그토록 순금 햇살을 쏟아 붓는지/ 쏟아 부어선 따글따글 익히는 게/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아닐는지”(「경전」에서) 대지도 하늘도 농부도 사력을 다한 땀방울이 연금술처럼 수정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백로 앞두고 충북 괴산에는 고추축제가 있습니다. 7월에 이웃집 어르신이 헛헛하게 웃으시며 “가뭄에 50말들이 물통 경운기로 나르며 키운 고추. 농협에 경매하니 10kg에 달랑 8.500원! 욕도 안 나와. 인자 농사 고만 지어야것슈.”(정우창 농부 페이스북에서)라 하셨는데, 이후 잦은 비로 그 농사마저 작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농부의 땀이 사회적으로 수정이 되게 만드는 것도 귀한 농사이겠지요. 괴산을 대표하는 작물 중에 콩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괴산에서 거래되는 콩 시세로 전국 콩 가격을 결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백로, 그 이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풍경이 바로 햇살 번지는 콩밭입니다.

 

백로白露 지나다

              

                                                - 오철수

 

이슬 때문일까

아침 콩밭이

유난히 청량淸?한데

그냥 순한 여자엉덩이가 떠올랐다

삼십 이년 교직생활을 병 때문에 학기 중에 끝내야 했던 아내가

마지막 출근 하려고 샤워 하고

남편 새벽잠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며 옷장을 열 때

실눈 뜨고 보았던 그 엉덩이

내 눈에 눈물이 맺혀야

진정 눈부신 거다

그래선지 콩잎에 맺힌 눈물들엔

돌이킬 수 없이 가을로 들어선

빛의 순한 엉덩이

가득

청량하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