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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비는 살리시고 농부는 돕습니다
흙살림 조회수 533회 17-07-0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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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소서(小暑), 비는 살리시고 농부는 돕습니다

소서는 7월 7일로 하지감자를 캐고 그 밭에 콩이나 깨 같은 잡곡을 심을 때입니다. 첫 장마가 걸려 있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됩니다. 너무 더워 비닐하우스 일은 새벽이나 해떨어진 시간에 합니다만, 밭일 하다가 비가 쏟아지면 비닐하우스로 피합니다. 초보농사꾼이 처음으로 비를 피해 하우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투닥투닥/ 비가 내리기 시작해/ 비닐하우스를 향해 뛰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빗소리 엄청납니다/ 뛰길 정말 잘했다며 돌아보니/ 에게, 비는 조금 더 오는 정도/ 아차 싶어 올려보니/ 비닐하우스 전체가 공명통처럼” 울린 탓입니다. 그래서 말 짓기 좋아하는 시인이 「당신이 내 맘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이라 제목을 붙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열 배는 더 쿵쾅쿵쾅”거렸던 그 순간이 정말 비닐하우스 빗소리 효과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저 효과만은 아닌 게 어쨌든 비가 오시면 작물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특히 후작으로 심은 작물에겐 비야말로 살리는 신(神)입니다. 보는 이의 눈에도 이러니 당사자인 작물 하나하나에게 비란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보다 더 큰 생명의 소리일 겁니다.

장마에 들면 농가에도 짬이 생깁니다. 다음은 아주 오래된 풍경입니다. 비가 내리면/ 파마약 냄새가 난다/ 비가 내리면/ 왁자지껄/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소리가 쏟아진다/ 비가 내리면/ 유일하게/ 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 숨 좀 돌릴 수 있는 날/ 이장집,/ 우리집이 미용실 되는 날”(심재숙「비가 내리면」에서). 하지만 비의 평화는 늘 짧습니다. 장마가 그치면 끝없는 농사일이 시작됩니다. 비 때에 맞춰 밭을 정리하고 다음 작물을 심어야 합니다. 또 단비를 먹고 쑥쑥 자라는 풀도 잡아야 합니다. 농서(農書)에도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하여 뿌리가 내리고 포기가 생기는 20일쯤 뒤인 소서 기간은 풀매기의 적기라고 합니다. 우렁이농법을 사용하는 흙살림 토종벼 논에는 풀이 덜합니다. 밭은 풀베기가 한 차례 끝날 때 뒤돌아보면 다시 풀 천지가 됩니다. 이렇게 비는 모든 것을 살리시고 농부는 그 일을 도울 뿐입니다.

그 일을 다음처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장맛비 그치면

                                        - 오철수

 

장맛비 그치고

쓰러진 옥수수 보러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옥수수 밭 전체가

부우응 부우응 부우응

거대한 벌 나는 소리입니다

옥수수꽃 하나에

일고여덟 마리 정도의 벌들이

쉴 새 없이 날고 있어

아예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저는 채밀採蜜이라는 말을

은밀한 이미지로만 갖고 있었는데

아닙니다 장맛비 끝난 옥수수 밭은 비유컨대

채밀 대공장입니다

부우응 부우응 부우응

비 때문에 밀린 일 벌충하듯

벌들 정신없습니다

농부도 마찬가지입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