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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망종(芒種), 논은 관계 예술이다
망종(芒種)은 24절기 아홉 번째로 6월 5일입니다. ‘망(芒)’은 벼나 보리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니, 그를 심기에 좋은 때를 말합니다. 지역마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 모내기를 합니다. 곡우 지나 모판을 만든 농부는 한 뼘쯤 자란 연둣빛 어린모를 보며 “가장 여리고 순한 몸짓 하나로/ 섬뜩한 초록, 초록의 들판을/ 청청청청 열어젖히는”(고재종「초여름」에서)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물 잡아놓은 논에 모내기를 합니다. “흙을 향해 허리 굽히는 게 모든 일의 시작인/ 농부들 푸른 모춤을 지고/ 산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네/ 뒷걸음치며 산에 모를 심네/ 바위 위에도 모를 꽂아 놓았네”(함민복「논 속의 산 그림자」에서) 모내기는 그저 논바닥에 모를 꽂는 것이 아닙니다. 그 논으로 들어온 모든 관계에 모를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도 모를 심는 것이 되고 바위에도 모를 심는 게 됩니다. 어젯밤 개구리 울음 사이에도, 별자리 사이에도, 바람에 살랑거렸던 물결 사이에도 모를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흙을 향해 허리를 굽힌 것은 이 모든 관계들에게 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벼농사는 모든 우주적 관계를 잇는 ‘대지의 내면’ 살림입니다. 농부는 생명적 관계를 잇고 살찌게 하여 지속가능한 양식과 삶을 일구는 생명의 예술가입니다. 흙살림농장에는 토종볍씨를 보존하는 아랫논과 식구들 먹을 벼를 심는 웃논이 있습니다.
다음 시는 아랫논에 모가 들어간 다음날, 그 예술품 논에 대한 감상입니다(2017. 6. 10 오후 2시 흙살림 토종농장에서 <예술, 농업에 물들다>는 주제로 제1회 농사예술제가 펼쳐집니다)
모가 들어간 논이 되고 싶다
-오철수
모가 들어가
하루 지난 논은
성스럽다
거기 어린모가 있고
다 클 때까지 필요한 여백과 물이 있는데
그 여백은 생명을 에워싼
어머니의 눈길 같음으로
비어 있던 몸에
물을 들이고
새지 않도록 논둑을 바르고
바닥을 고르게 한 다음
아기를 모신 자
태교하는 어머니가 그렇듯
몸은 기도祈禱임으로
거기에 더하여
모가 들어갈 때 일었던 흙탕물을
밤새 가라앉히며
오직 어린모의 독재를
기쁨으로 받아내길 맹세하고
자기를 버린 자
그 평화임으로
모가 들어가
하루 지난 논은
제 몸 안에 하늘과 해와 바람을 들여놓고
어린모의 눈을 떴음으로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