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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사람의 노동도 꽃처럼 피기 시작한다
흙살림 조회수 544회 17-04-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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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淸明), 사람의 노동도 꽃처럼 피기 시작한다

청명(淸明)은 24절기의 다섯 번째로 양력 4월 4일입니다. “겨우내 고승처럼 면벽하던 산이/ 꽃불을 들고 내려와/ 어두운 마을 기웃거리는”(김경윤「청명」) 청명은 뜨겁게 뜨겁게 꽃 피고 초록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생명적 기운이 가득하니 하늘의 표정이 맑고 대지의 기운 또한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맑고 밝음 속에 생명적 본성과 ‘천명’(天命)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명은 푸른 하늘의 뜻을 따르는 저마다의 길이 열리는 때입니다. 그럼 이때 대지의 인간에게 맑고 또렷해진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늘과 대지의 생명을 잇는 일, 농사입니다. 인간도 이 대지와 더불어 노동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봄꽃을 신호로!

하지감자는 이미 심고, 이때부터 작물 모종을 준비하고 그게 들어갈 밭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꽃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우듯 사람들도 한해의 결실을 위해 노동의 꽃으로 피는 것입니다.

 

  쉰아홉/ 밭을 만들며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거시기는 오그라붙고/ 오줌도 졸졸 나오는데/ 그나마 보기 드문 진노랑이다

 

잇크, 조심해야지 하며 발등을 내려다보는데/ 고들빼기 억센 이파리가/ 방사형으로 웃어제끼는 것 아닌가

 

이 나이 먹도록/ 몸 놀리는 일 안 하고 산 게/ 무슨 자랑일까마는/ 그래도 산다고 살았으니/ 에잇, 쪽팔려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자

 

이제부터라도/ 이 밭에서 지은/ 내 몸을 가지고/ 고들빼기처럼 살기로 한다

- 오철수 「고들빼기처럼」

 

청명 무렵 내 몸이 밭에 있으면 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시절인연을 다하는 것입니다. 귀농 첫해인 제가 “이 나이 먹도록/ 몸 놀리는 일 안 하고 산 게/ 무슨 자랑일까마는/ 그래도 산다고 살았으니/ 에잇, 쪽팔려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자”며 밭을 만드는 일에 몸과 마음을 욱여넣은 것도, 비록 다른 농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생산력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이 밭에서 지은/ 내 몸을 가지고/ 고들빼기처럼 살기로” 마음먹는 것도 인연을 다하는 일일뿐입니다. 물론 힘듭니다. 하지만 선배농부와 나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밭에서 지은 몸과 마음을 가졌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도 “밭에서 지은/ 내 몸”을 만드는 것이고 그런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렇게 사람의 길을 잡아 나아갈 때 나도 이 밭두렁에 핀 고들빼기 억센 이파리처럼 방사형으로 맑고 밝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밭 만드는 일이 초록생명을 기를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일입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 우주율을 대지에 흐르게 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노동이고 하늘이 보기에도 좋은 노동꽃입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