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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춘분(春分), 봄볕의 큰 사랑을 보라!
춘분은 24절기의 네 번째로 3월 20일입니다. 남쪽으로 내려갔던 태양이 올라오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는 때입니다. 비유컨대 멀리 남쪽으로 간 볕이 푸른 풀을 뜯으며 흰 젖을 가득 채워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볕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을 찾아 일일이 젖을 물립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초록 잎과 꽃을 피웁니다. 자연의 이 놀라운 기억력, 생각해 보면 그 하나하나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바람의 따뜻한 혀가/ 사알짝, 우듬지에 닿기만 해도/ 갱변의 미루나무 그 이파리들/ 짜갈짜갈 소리날 듯/ 온통 보석조각으로 반짝”(고재종「성숙」에서)인다는 것!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며 ‘아, 봄이구나’라고 말하며 자연의 ‘믿음직한 사랑’을 느낍니다. 작년 늦은 가을날, 볕은 생명들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겨우내 잘 비우고 생명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어. 그러면 다시 돌아와 젖을 줄 테니.’ 그리고 생명들은 지금 그 착한 입을 열고 이 억 년의 약속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봄은 큰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처럼 밝습니다.
시인은 이런 믿음직한 사랑을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봄의 줄탁
- 도종환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옴질옴질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만한 몸을 내미는 꽃들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 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일은 부활절
시골 교회 낡은 자주색 지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저녁 햇살이 몸을 풀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가 일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봄볕의 손끝은 정말 정교합니다. 어느 것 하나 위력으로 열지 않습니다. 무차별적으로 다가가서는 각자에게 맞는 정교한 손끝으로 각자의 생을 엽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마치 모든 공이 겨울을 이기고 나온 그 생명체에게 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엽니다.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옴질옴질거리는” 그 생명적 노력(알에서 나오려는 병아리가 보내는 소리를 ‘줄?’)이 오롯해졌을 때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아주는(병아리가 알에서 태어날 시기를 알고 어미닭이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 것입니다. 그 순간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만한 몸을 내미는 꽃들”입니다. 이것이 겨울을 이기고 열리는 부활로서의 봄입니다. 그러니 부활이라는 말도 자연에서는 살려는 노력이 극에 달할 때 터뜨림으로 일어나는 사건이지, 외부적인 힘에 의해 거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맘때쯤에는 괴산시장이나 목도장에도 모종들이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흙살림농장 육묘동에도 밭에 심을 무지무지 많은 작물들의 모종이 잠들고 눈뜹니다. 초록 사랑으로!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