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보기 기부금내역
농업동향

페이지 정보

우수, 마침내 녹다!
흙살림 조회수 776회 17-02-17 16:31

본문

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우수(雨水), 마침내 녹다!

크???-퀜? 룤죜.jpg
 

우수(雨水)는 24절기 두 번째로 얼었던 강물이 녹는다는 2월 18일입니다. 이때쯤 티브이 카메라가 잡은 얼음이 녹아떨어지는 클로즈업 장면은 선언적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몸도 그 변화에 솔깃해집니다. 그런데 왜 얼음이 녹아 물로 흐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까? 흘러야 할 것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녹는’ 생명적 움직임에서 자연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한겨울의 깊이에서 ‘입춘’이라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어떤 깨달음처럼 내게 찾아들고, 그리하여 움츠렸던 몸도 풀립니다. 얼어붙었던 것이 녹고, 닫혀 있던 것이 열리고, 딱딱했던 것이 부드러워지며 생산의 몸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음 시를 읽겠습니다.

 

雨水는/ 겨우내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비로소 흙과 살을 섞기 시작하며/ 약간은 신열을 앓는/ 축축한 냄새다// 아니다, 雨水는/ 막 살연애에 눈이 뜨이는 이들처럼/ 깡마른 나뭇가지들 어딘가 모르게/ 싱그런 빛을 모아든/ 묘한 웃음이다// 아니, 雨水는/ 스스로 동안거에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허옇게 정진하다가/ 이제 막 깨달아 녹아떨어지는/ 탄성의 소리// 아니, 다 적절치 못하다/ 솔직히 말해서/ 내 여자 살꽃 터지는 눈먼 냄새다 雨水는/ 오랫동안 무엇을 열망하다가/ 천천히 열리는// 雨水는 ?오철수 「우수는」 전문

 

우수는 축축한, 흙냄새, 녹는다, 부드러움 같은 낱말을 거느립니다. 그중에서도 얼었던 땅이 풀리며 내는 독특한 흙냄새는 관능적이기까지 합니다. 과하게 생각하면 가이아 여신이 생산의 자궁을 여는 현상입니다. 처음 흙살림농장에 와서 그 냄새가 좋아 여기저기 쏘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맘때쯤 나뭇가지의 끝은 물이 올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햇살로부터 저만 아는 눈짓을 읽은 듯 “싱그런 빛을 모아든/ 묘한 웃음”입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인상은 얼었던 물이 풀리는 장면입니다. 얼어버려서 더 이상 스며들지 못하고 “스스로 동안거에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허옇게 정진하다가/ 이제 막 깨달아 녹아떨어지는/ 탄성의 소리”입니다. ‘마침내 녹아’ 대지라는 거대한 여신의 자궁이 열리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봄이 오면 내가 너희들을 살려낼 것이다’는 억 년의 약속이고, 그 억 년의 약속이 흙과 우리 몸으로 흘러가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겨울 공화국이지만 생명의 대지는 생명적 관능을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재종 시인도 우수를 “모진 돈들막 귀영치의/ 씨톨 하나도 깨우는 속삭임이여/ 논두렁 밑 양지녘엔/ 벌써 저리 냉이꽃 반짝이네// 얼음에 뜬 애보리조차/ 지상으로 힘껏 떠미는 뜨거움이여/ 덧짚 걷어낸 마늘밭엔/ 벌써 저리 마늘촉 서늘하네”(「우수」에서)라고 노래합니다. 이제부터 밭 만들기 준비를 해야 합니다. 멀칭 벗겨내고 트랙터로 갈고 균배양체 퇴비주고 다시 갈고 이제 흙살림농장도 일을 시작입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