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보기 기부금내역
농업동향

페이지 정보

입춘, 생명적 힘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흙살림 조회수 693회 17-02-06 10:30

본문

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입춘(立春), 생명적 힘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크???-??.jpg
 
 

입춘(立春)은 24절기(節氣)의 첫 번째로 양력 2월 4일입니다. 말뜻은 봄이 일어난다지만 아직 한겨울입니다. 그래서 왜 ‘立春’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어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특징적으로 나뉘지만 자연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봄은 겨울 속에서 태동합니다. 겨울 속에서 봄으로의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고 서서히 차오르듯 ‘일어서는’[立] 것입니다.

그렇다면 봄으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적 힘입니다. 겨울을 견디며 생명의 불씨만 간직하던 것들이 서서히 생명적 운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남쪽 끝으로 갔던 태양의 변화에 때맞춘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입춘에 들어서면 언 땅이 녹고,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고,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겨울잠을 자던 흙속의 미생물도 잠에서 깨어나고 나무의 뿌리들도 발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겨울을 견딘 생명적 힘이 봄을 밀어 올립니다. 그래서 입춘은 생명들이 자기를 일으켜 세울 따뜻한 기운에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자기화해서 봄의 몸짓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다음 시를 읽겠습니다.

 

立春

- 황규관

 

강추위다.

 

유리창에 핀 하얀 성에꽃을 보고

딸아이가 일어나자마자 활짝 웃는다.

 

어린 딸아이가 일어나서 성에꽃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어른인 나에게는 성에꽃이 강추위를 실감하는 증좌일 뿐인데, 천진한 딸아이에겐 어떤 변화입니다. 어쩌면 ‘아빠, 아빠, 꽃, 꽃’하며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성에꽃을 가리키며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봤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의 현실의식은 ‘성에’ 꽃으로 읽지만, 본능적으로 생명적 변화에 환호하는 아이는 성에 ‘꽃’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강추위여도 생명적 존재는 자기 조건 안에서 생명적 움직임을 보고 “활짝” 웃습니다. 그게 생(生)하려는 생명의 힘의 본성입니다.

지난해 괴산은 입춘 지나고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어딜 보아도 ‘얼어붙는다’가 아니라 ‘몸을 푼다’의 느낌이었습니다. 산 능선은 부드러웠으며, 들판의 가운데쯤 허공은 환합니다. 물론 착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신기해서 귀농귀촌학교 교장 정우창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내 눈이 이상한가? 저기 밭 한가운데쯤 허공이 환한 느낌이네.” 이에 “우창이 왈,/ 지금쯤 저 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미생물들이 깨어/ 하품도 하고 똥도 눗고 온통 와글와글 할 테니/ 그 기운이 올라와서 그럴 것”이라고 답합니다. 후에 이태근 선생이 쓴 『흙을 살리는 길』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흙은 생명체 덩어리입니다. 1그램의 흙에 많게는 수십억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가짓수도 수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생명체들이 이제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입춘!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