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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지난 시간을 갈무리하라!
흙살림 조회수 584회 16-12-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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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2

 

 동지(冬至), 지난 시간을 갈무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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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冬至)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로 12월 21일입니다.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 때입니다. 그러니 다음날부터는 낮이 조금씩 길어집니다. 그래서 태양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밤이 가장 긴 동지의 의미를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동지

-정양

 

둘로 내어 이불 아래

숨겨둔 허리토막도 있었거니

토막낸 그 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허망했는지는 몰라도

눈 깜짝하는 틈에 가버리는 청춘이

눈멀고 보면 진땀나게 길었으리

토막낸 허리와 눈먼 청춘을

그 간절했던 거 진땀나는 거 허망했던 거

길고 짧은 거 뜬눈으로 일일이 대보라고

동짓달 긴긴 밤도 마침내 눈이 멀었다

 

동짓밤이 너무 길어서 그 한가운데를 잘라 뜨끈한 이불 속에 넣어두었다가 임이 오면 펴놓으리라는 황진이의 시조가 있습니다. “둘로 내어 이불 아래/ 숨겨둔 허리토막도” 있을 만큼 긴긴 동짓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긴 시간도 눈 깜짝 할 사이에 가버립니다. “간절했는지 허망했는지는 몰라도” 지나갑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뜨고 있어도 지나갑니다. 욕망의 시간은 그처럼 휘익 지나갑니다. 우리의 청춘도 “눈 깜짝하는 틈에” 가버립니다. 그래서 허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고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진땀나게 길었던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눈 깜짝하는 틈에 가버린 것이니 눈먼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는지 허망했는지”를 물을 수 없습니다. 다만 눈을 뜨고 보니 겨울도 깊고 밤이 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긴긴밤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까? 시인에 의하면, 지난날을 그저 사라져버린 허망한 시간으로 만들지 말고 “토막낸 허리와 눈먼 청춘을/ 그 간절했던 거 진땀나는 거 허망했던 거/ 길고 짧은 거 뜬눈으로 일일이 대보라”는 천혜의 시간입니다. 살아온 날을 일일이 반추하여 대조하며 가치 있는 것은 생명적 능력으로 저장하라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건강한 생명력으로 순환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했던 거 진땀나는 거 허망했던” 것을 한번은 이 세상에서 피워내는 삶으로 살았다면, 한 번은 생명적 기억으로 만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동짓달 긴긴 밤도 마침내 눈” 멀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동지의 긴 밤이 그냥 긴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을 일일이 대보듯이 기억하여 새로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실천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얼어붙은 땅속에서부터 양(陽)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복괘(復卦)의 시간입니다. 지난 생명의 죽음과 새롭게 갈무리한 생명의 부활처럼!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