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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인간은 겸손을 배울 때다
흙살림 조회수 609회 16-12-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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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대설(大雪), 인간은 겸손을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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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설(大雪)은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로 12월 7일입니다. 큰 눈이 많다하여 대설이라고 합니다. 소설(小雪) 무렵 살짝 내리는 눈은 아름답습니다. 반짝이며 내리는 첫눈은 이 생각 저 생각 버리고 지금을 가득 살라고 말합니다. 그 눈이 메마른 겨울 땅을 덮을 때도 그저 이불처럼 대지를 품어주는구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큰 눈으로 변하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우선 익숙한 차별상差別相이 지워집니다. 차별이 지워지면서 두 번째로 내 감각의 세계가 낯설어집니다. “눈 덮인 벌판에/ 다시 눈 쏟아진다/ 모든 경계/ 산도 들판도 고스란히 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움직임 하나 없다// 오직 눈/ 너무 깨끗하여/ 너무 고요하여/ 무서운 아름다움이여”(김영숙「폭설」에서) 여기서 눈이 더 쏟아지게 되면 세 번째로 꼼짝할 수 없는 우리는 무한이 작아집니다. 그동안 삶에 필요했던 감각과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겸손(謙遜)’함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됩니다.

큰 눈 오는 풍경을 보겠습니다.

 

눈 오는 집의 하루

- 김용택

 

아침밥 먹고

또 밥 먹는다

문 열고 마루에 나가

숟가락 들고 서서

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밥 먹는다.

큰 눈이 내립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자연을 경작하고 변형시키고 심지어는 파헤치기도 하는 인간이지만 정말 꼼짝할 수 없습니다. ‘밥 먹고 또 먹고 또 먹을 뿐’인 인간입니다. ‘자연의 주인으로서 자연을 경작한다’는 인간 중심주의적 이미지들은 단번에 무너집니다. 인간은 자연의 시간을 따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때 저 눈이 인간을 향해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한 번 착해지고…’.

그렇다고 하여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에게 가장 중요한 일, ‘밥 먹고 또 밥 먹고’를 한 것입니다. 또 뜨거운 방바닥에 한해 농사일로 힘들었던 몸도 지집니다. 바빠서 접어두었던 일가친척도 생각하고 뒷산에 살고 있는 고라니 걱정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비우니 들어오는 것들과 더불어 한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겸손한 삶이란 게 별거 아닙니다. 눈이 쏟아지니까 “아침밥 먹고/ 또 밥 먹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또 밥 먹는 것이구나 생각되면 다시 “방에 들어와/ 또/ 밥 먹는” 것, 다른 분별적인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큰 눈 오는 날은 그것만으로도 빛나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연의 걸음을 따르며 생을 돌보는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하여 우리 생명적 에너지는 오롯해집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