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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깨우고 마음도 깨운다, 하동의 차
딱 스무 살이었던 해 나는 학교에서 선배들과 함께 서울 근교에 있는 절에 간 적이 있었다. 주지스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되어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제일 먼저 발을 들여놓는 나를 스님께서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지만 버티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아 붉어진 얼굴로 다시 방을 나갔다가 들어서니 주지스님께서는 앞으로 당겨 앉으라며 나에게 차를 한 잔 주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해하는 내게 방을 드나들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함께 간 선배 중 하나가 민망해하는 나를 대신해 그냥 앞으로는 문지방을 밟지 말고 다녀라 하고 일러주시지 꼭 그렇게 다시 나갔다 들어오라 말씀하시니 옆에서 뵙기에 좀 그렇다고 편을 드니 주지스님께서는 ‘자네도 그냥 차나 한 잔 마시게.’ 하시며 웃으셨다. 얼굴 뜨거운 이야기와 함께 차는 그렇게 나와 인연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차산지는 보성이겠지만 나는 야생차를 만나러 하동으로 자주 간다. 하동의 차 재배지역은 섬진강의 안개로 인해 습기가 많으며 찻잎을 따는 시기에는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 재배에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자갈이 많은 사력질 토양이면서도 수분이 많은 곳이라 다른 지역의 녹차보다 성분이나 맛, 품질 등이 우수하다고도 한다.
차는 기호식품으로 널리 애용되어 왔지만 이제는 기능성식품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녹차에 10~18% 이상 함유된 카테킨류는 항산화 작용과 항암 작용에 탁월하며 녹차의 잎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카테킨 중 하나인 EGCG(EpiGalloCatechin-3-Gallate)라는 물질은 기초대사량을 늘려 체지방 비율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의 불용성분의 하나인 식이섬유는 변비, 대장암, 당뇨병 등을 예방하고 베타카로틴은 항암, 동맥경화, 백내장 등을 예방하며, 비타민E는 항산화작용이 있어 암, 당뇨병, 심장병, 백내장 등에 대한 면역증강작용이 있다. 한방에서는 심신을 맑게 하고 숙취를 해소하며 번갈을 제거하고 간담을 시원하게 하며 열을 내리고 담을 제거하며 폐와 위를 깨끗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갈증을 해소한다고 한다. <본초강목>에 차는 쓰면서 성질이 차기 때문에 가라앉고 내려가므로 화를 내리는데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하지만 신경을 흥분시켜 수면을 방해하므로 취침 전이나 식사 전후, 완전 공복시, 단백질 식사를 할 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철결핍성 빈혈 환자나 임산부, 위궤양 환자도 차를 피하는 것이 좋다.
차의 공급과잉의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수용성물질만 추출해 ‘마시는 차의 시대’에서 찻잎을 요리해 통째로 ‘먹는 차의 시대’로 전환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동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차음식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려마시고 남은 찻잎으로 떡 한 번 쪄먹는다.
